집안싸움의 날 선 언성들이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이념의 좌우, 노선상의 보수와 진보, 노와 사의 다툼이 그칠 날이 없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포항 전문건설노조의 포항제철 점거와 파업 등의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자면 어느 정도의 뜨거운 토론과 격렬한 논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부문에 걸쳐 한꺼번에 많은 것들이 뒤바뀌는 특수상황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도를 넘었다. 걸핏하면 욕에다 삿대질이요, 궐기대회와 시위, 주먹질에 몽둥이세례까지 자주 동원된다.

밖은 어떤가. 북의 핵문제에 대한 강대국들의 미묘한 입장 차이, 한국과 강대국간 관계의 변화 기류, 그리고 언제 바뀔지 모를 남북관계로 인해, 한반도 상황은 꽤 불안정한 국면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바깥바람은 험상궂은데 집안은 온통 싸움질로 북새통이다. 이러고도 내내 무사할까. 일 년 뒤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의 험난한 과정은 가뜩이나 쇠잔한 국민화합의 기운을 결정적으로 고갈시킬지도 모른다.

싸움의 열도는 대체로 두 가지 요인에 좌우된다. 1.싸움의 두 당사자가 실제로 얼마나 서로 다른가. 2.두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어떤 말씨를 쓰고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서로의 생각과 입장에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경우, 또는 그 다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말투가 사나우면 큰 싸움이 되고 만다. 차이가 크고 중대한데다 주고받는 말까지 거칠면 싸움은 쉬 살기를 띤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싸움의 양상을 보면 잘못된 말투로 인해 싸움이 불필요하게 커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과 매스컴의 논평기사, 칼럼내용들을 유심히 보면 언어순화운동을 크게 벌여야 되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말과 글의 행간에 깐죽거림과 비아냥거림의 어감이 짙게 묻어 있고 같은 뜻의 단어들 중에서도 강경하고 투쟁적이며 비속한 단어들을 일부러 골라 쓴 흔적 앞에서는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필자가 오래전 어느 신문사의 논설위원(비상임)으로 일할 때 논설주간이 '보다 강력한 표현'을 쓰도록 주문하던 일이 생각난다. 웬만큼 강력한 언어에는 독자들이 꿈쩍도 않는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독자의 관심을 끄는 효능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효과를 두고서도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나 청중의 주목을 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사기법과 반대자들을 일부러 화나게 하는 악의적 말투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설령 교묘한 수사로 점잖음을 위장하고 있는 발언에서도 말의 뼈 속에 번뜩이는 비수를 보고 놀라는 수가 있다. 이 역시 본질적으로는 저질발언의 범주 안에 드는 것이다.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고 국가를 안정시켜야 할 지도자들이 함부로 쏟아낸 말로 사회를 혼란시켜서야 될 말인가. 고운 말 쓰기를 하기 어렵다면 말을 아끼는 절제와 겸양이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돈벌이보다 씀씀이가 더 많은 개인과 기업은 결국 '파산선고'를 받고 만다. 비슷한 이치로, 듣는 말의 양보다 쏟아내는 말, 그것도 험한 말이 더 많은 지도자들에게 '발언금지'선고를 내리면 어떨까.

이종대 전 대우자동차 회장 서울

(그 옛날 울산토박이들은 태화강을 '태홧강'이라고 발음합니다. 맑고 아름다웠던 그 '태홧강'은 울산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칼럼 '태홧강'은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 한켠에 울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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