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울산 사람들에게 정해영은 동천학사로 더 기억에 남는다. 어려운 시절 서울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에게 동천학사는 희망이었고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것이다. 정해영은 그당시 어려운 고향의 후배들을 위해 동천장학회를 설립, 성북동 언덕바지에 동천학사를 세워 운영했다. 그렇게 동천학사에서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닌 학생들이 500여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는 이미 많은 인재들을 키워 왔던 것이다. 그 기간이 55년부터 80년까지 였다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해영은 미수(88세)를 맞아 100억원 규모의 장학회를 설립했다. 1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은 개인이 갖기는 어려운 금액이다. 그런 거금을 정해영은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은 것이다. 지난 29일 정해영의 가족들은 코리아나 호텔에서 미수연을 갖고 여기서 장학회를 설립 운영하기로 했다며 부의 사회 환원을 몸소 실천했다. 사실 이같은 일을 실천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다. 말하기가 좋아 기부문화 정착이니 부의 사회 환원을 이야기 하지만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어렵게 번 돈을 선뜻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 쉽지 않은 일을 정해영은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날 행사장에는 안우만 전 법무장관 차화준 전 국회의원 그리고 김기배 의원 김달현 동일팬벨트 사장 등 정.재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해 뜻깊은 행사를 지켜 보았다. 옛날부터 울산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나왔지만 이렇게 후학들을 위해 거금을 쾌척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정해영은 울산에서 인재를 키워온 사람으로 오랫동안 기억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