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로씨(35·현대자동차 생산관리3부)는 퇴근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가정이 있는 울산시 남구 신정동이 아닌, 용연동의 "농장"으로 간다. 그가 그의 "아이들 만큼이나 사랑하는" 애견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농장"이라고는 하지만 수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가 어릴 때부터 유난히, 변함없이 좋아하는 개들과 마음껏 놀 수 있는 곳일 뿐이다. 진돗개, 세퍼드, 삽사리, 콜리, 쉐틀란트 쉽독, 아메리카 코카스파니엘, 퍼그, 골렌레트리바, 마르티스, 쉬즈, 푸들 ". 그저 종류별로 길러보고 싶어 한두마리씩 늘린 것이 20여마리가 됐다. 그의 "농장"은 마치 애견 전시장 같다.

 그는 농장에 가는 길에 모 회사에 들러 잔반을 얻는다. 잔반에 고기가 들어있는 날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를 기다리는 애견들이 꼬리는 흔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늘은 어느 놈이 먼저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올까" 마음 속으로 꼽아본다. 11시, 12시까지 개와 함께 놀고, 훈련도 시키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솔직히 친구나 동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지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결혼 전에는 새벽까지 개훈련을 시키곤 했는데 결혼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당기려 노력하고 있다.

 그의 "첫 개"는 진돗개 "미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 가서 한푼도 쓰지 않고 아낀 용돈에 초등학교 때부터 갖고 있던 저금통장을 털어 "거금" 13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중학교 때 집에서 기르던 개가 쥐약을 잘못 먹고 죽어버리는 바람에 3일동안 공부도 안하고 밥도 먹지 않았던 이후 벼르고 별러서 마련한 것이다.

 왜 개가 좋으냐고 물으면 그는 특별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개는 사람과 똑같아요. 아니 어떤 면에서는 사람 보다 더 낫죠. 사랑을 준 만큼 반드시 되돌려 줍니다.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하는 정도다. 한마디로 하자면 "그냥"이다. 달리 이유가 없다. 그의 개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끼리 나누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것이다.

 "미나"로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혈통견에 관한 관심은 너무도 깊어져 대학 때 울산진도견동호인회(울산진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회원들은 모두 그보다 10~30세 이상 많은 어른들이었다. 그가 군대 간 뒤에는 그의 아버지가 이 모임에 대신 나가기도 했다고 하니 부전자전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의 개를 돌보는 일에 아버지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달동안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70만원 주고 산 요크셔테리아를 두고 군대를 간 뒤에는 그의 여동생과 개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군대 가서도 연대본부 사단본부로 불려다니며 개를 훈련시키는 일을 보직 아닌 보직으로 삼았다. 사병들 사이에서 "개아범"으로 불렸다. 훈련에 관한 자격증은 없지만 매나 야단이 아닌 관심과 사랑으로 가득한 그의 훈련에 따르지 않는 개는 없다.

 그가 키운 진돗개 가운데 "호선"이는 진돗개경연대회에 출전해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호선이는 아는 사람에게 소개해준 개였는데 그 사람이 개를 잘못 키워 건강이 안좋아 데려온 개였어요. 어머니 몰래 냉장고를 열어 계란, 우유, 치즈를 꺼내 먹이면서 정성을 들였더니 다시 건강을 회복했죠. 그 개는 정말 똑똑했어요. 하나를 가르쳐주면 둘을 아는 정도였죠. 어느날 선배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차를 처음 타는 호선이는 문을 열어주니까 차안에 들어가더니 의자가 아닌, 바닥에 바른 자세로 앉아 창밖으로 응시했어요"

 개에 관한 공부도 누구 못지 않게 많이 했다. 그의 책꽂이에는 개에 관한 책만 빼곡하다. 울산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애견연맹이 인정하는 진돗개정심사위원 자격을 갖고 있다. 전국에서 열리는 애견대회에 심사를 하러 다닌다. 오는 9월14~1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 2002 FCI 서울인터내셔널 도그쇼"의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돼 있다.

 개에 관한한 전문가인 척하거나 유난을 떨지는 않지만 월드컵과 함께 갑자기 애견문화가 확산되면서 개에 대한 사랑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으로 혈통서만 믿고 거래를 하죠. 개를 돈으로 환산해서 가치를 매기거나 대회 우승 경력만 선호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애견문화가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거죠. 또 애견 중심으로 발전하다보니 진돗개를 비롯한 큰개들이 천대를 받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죠."

 그는 기성문화에 물들지 않은 젊은 사람들과 함께 동호회를 만들어 올바른 애견문화를 형성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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