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별 사회적 성취도 인정으로
성숙한 민주사회 참다운 평등을

지난 이른 봄, 지방여행 중 봤던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풍경이 있다. '경축! 朴00의 子 朴00 S大學校 합격'이 그것이다. 현수막의 박씨 아들은 그 지역의 수재였을 것이다. 그 지역학교에서 역사상 최초로 S대학교에 합격했을 것 같았다. 박씨의 꿈에도 그리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징표로 그 현수막만큼 눈물겨운 것도 없으리라. 나그네의 콧등도 찡했다.

한편으로, 그 현수막은 박씨의 감격을 넘어 농민들의 평등의식을 표현하는 절규라고 볼 수 있으리라. 비록 농사 짓는 처지지만 가난을 벗어나려는 욕망을 자식을 통해서라도 이루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이뤘다는 선언에는 '누구나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상향적 계층이동의 의지가 숨어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현수막을 내건 주체를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는 것을 꺼리는 심성이 있다. 따라서 이 현수막은 박씨가 손수 내다 건 것은 분명 아니다. 현수막 밑에는 밀양 박씨 종친회라고 적혀 있었다. 종친들은 박씨의 소원성취도 기뻤겠지만 S대 입학생이 자기 종친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더 뿌듯했을 것이다. 그가 종친회의 번창에 일조하리라는 기대와 함께 다른 종친회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인적자원을 확보했다는 만족감도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평등지향적 심성과 연고주의가 묘하게 얽혀있음을 알 수 있고, 저 역사적 뿌리 깊은 연고주의적 관계맺기의 행위가 평등지향적 심성에서 힘을 얻어 더 번성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평등의식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상태에 직면하게 되면 분노와 광란으로 이어지고 파멸의 상태로 진전하기도 하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지로 바뀔 때는 예상할 수 없는 무서운 성취력을 발생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난다'는 말에 쉽게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동등하지만 그 사람이 지닌 능력과 적성과 개성은 제 각기 다르며 그것들은 성장과 더불어 다양한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까지 인지할 때 비로소 제 힘을 발휘한다.

한 사람의 지도자와 한 사람의 농민은 인권에 있어서는 동등하지만 그의 영향력에 있어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덕망 있는 인격자와 사기꾼, 창의적인 예술가와 유능한 경영인 사이에는 많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명명백백한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심각한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재산과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그 인격과 인권에 있어서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그 능력에 따라서 다양한 사회적 지위를 누려야한다는 것은 분명히 구별되어야한다. 이러한 인식이 존중되는 사회가 민주 사회이며 민주시민은 각기 그들의 모습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능력과 개성에 의해 사회적 성취의 상황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성숙한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깎아내리고, 잡아당겨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잘 사는 사회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판명되지 않았는가. 획일적인 평등의 함정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우리 모두가 조화로운 삶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영길 서울중앙지법 조정위원·서울

그 옛날 울산토박이들은 태화강을 '태홧강'이라고 발음합니다. 맑고 아름다웠던 그 '태홧강'은 울산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칼럼 '태홧강'은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 한켠에 울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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