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나 생각, 상품, 가게, 회사 등 모든 대상에는 이름이 있다. 김춘수 시인은 자신의 유명한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이름과 존재의 관계를 명료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름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지만 이름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을 의미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다시 말하면, 이름을 통해서만 그 대상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상품은 상표를 남기고, 상점은 상호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이름의 중요함을 나타낸 말이다.

상품이나 회사, 가게 이름에는 그 속에 대상의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상품의 이름을 보고 어디 상품인지, 어떤 상품인지, 회사 이름을 보고 어느 나라 회사인지,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지, 가게 이름을 보고 그 가게가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름을 만드는 사람의 양심이고, 정신이며, 이름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효용이다.

우리는 한 발짝만 밖으로 나가면 가게와 상품 이름들이 온통 외래어로 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뜻도 모르면서, 어법에도 맞지 않는 수많은 외래어, 로마자 이름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도대체 KT&G, LG, SK, POSCO, KTF, KTX, CJ, GS, KIXX, KB가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이며, 무슨 뜻이며, 그것이 한국적 기업의 의미를 과연 가지고 있는가? 또한,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우리나라 자동차 이름들, 아파트 이름들에 우리말로 된 것이 얼마나 있는가? 또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을 외국이름으로 지은 것은 우리 마을 내 이름을 외국 이름으로 짓는 것과 같다.

우리말과 글로 된 가게, 상품, 회사 이름을 천하고 촌스럽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못난 사람이고 못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임에도 아직도 우리 스스로 그렇게 업신 여기고 못나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제 우리는 우리말로 우리의 상품 이름을 붙여 세계에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미래 우리가 이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중국 정부는 상호를 등록할 때 중문 상표(브랜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SK의 중국식 브랜드는 '아이쓰카이(愛思開)', CJ와 GS는 각각 '시제(希杰·희망과 빼어남)'와 '자스(佳施·아름다움을 베풀다)'로 쓰고 있다. 세계가 중국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세계 경제를 쥐고 있는 화교들은 자기들끼리는 언제 어디서든 중국말을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든 상품, 그들의 가게, 그들의 회사에는 어김없이 중국 냄새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이나 현대의 이름이 그래도 한국적 이미지와 언어(한자어지만)로 돼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는 우리말로 된 기업도 세계 속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앞으로 우리 가게, 앞으로 우리 상품, 우리 회사 이름은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짓도록 하자. 우리가 사는 아파트 이름도 아름다운 우리말로 짓자.

임규홍 경상대 교수·진주

그 옛날 울산토박이들은 태화강을 '태홧강'이라고 발음합니다. 맑고 아름다웠던 그 '태홧강'은 울산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칼럼 '태홧강'은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 한켠에 울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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