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 1990년대의 일본경제에 붙여진 제목이다. 1991년부터 99년까지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를 약간 웃도는 정도였다. 80년대의 연평균 4% 성장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세계적인 경제모범국가 일본에 10년 불황의 고통을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부동산거품의 증발이었다. 일본부동산연구소의 계산으로는, 본격적인 버블형성기인 1985~90년의 기간에 일본 6대 도시와 상업지역에서 땅값이 무려 4배나 뛰었다. 황성을 팔면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통째로 산다는 계산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91년 부동산시장 붕괴로 동경의 집값은 피크 때의 3분의1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이후 2005년까지 부동산거품증발로 사라진 자산가치의 총액은 무려 1천조엔에 이른다. 이 통에 은행돈을 꾸어 땅과 집을 산 기업들과 중산층 시민들이 대거 몰락했다. 부동산 담보대출로 한 때 큰 재미를 본 은행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대출을 껴안고 끙끙거려야 했다.

잃어버린 10년이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걱정과 한숨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집값 땅값의 뜀박질 기세도 범상치 않거니와 부동산 광기는 이제 전국 방방곡곡을 휘몰아친다. 가히 장관이다. 진화작업에 나선 정부가 소방차를 총동원하여 굵은 물줄기를 억수로 뿜어대는 데도 가격의 불길은 좀체 잡히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보고서는 이미 지난해 1/4분기의 아파트 값에 32%의 거품이 끼어 있으며 땅값과 집값이 20~30% 떨어지면 800조원이 공중으로 증발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거품붕괴의 충격이 그만큼 위력적이라는 말이다.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는 최근 아태지역에서 한국의 부동산가격이 가장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앞으로의 가격동향과 관련하여 국민 10사람 중 7사람이 더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는 여론조사도 나와 있다. 가격은 다수의 시장참여자가 예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질이 있다.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애써 부정하는 모습이지만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신뢰는 부동산거품보다 먼저 사라져 버렸다.

거품은 거짓이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 거짓에 속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집값 뛰면 얼씨구! 땅값 오르면 절씨구! 무릎 한번 크게 치고 사람들은 은행으로 달려간다. 부동산담보를 만난 금융기관이 지화자! 손뼉 친다. 예상이 여러 차례 적중했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부동산불패'의 자신감에 쉬 빠져든다. 거품에 속아 낭패를 보리라는 경고들은 귓가에 겉돈다.

거품 빠질 무렵의 대혼돈 말고도 거품은 그 자체로도 경제에 큰 재앙이 된다. 가뜩이나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은 싼 땅을 찾아 보따리를 싸야겠다고 벼른다. 집값과 전세가 오르면 임금인상을 외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사나워진다. 땅과 건물 비용이 생산비의 주요항목인 이상 제품의 가격 또한 인상 압력을 받는다. 이 모두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 생산위축과 실업증가는 피할 길이 없다. 이미 청년실업은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운 좋게 직장을 붙잡은 젊은이들도 상당수가 일자리의 '낮은 품질'에 시달린다. 20~30대의 취업자중 임시직이 40%라는 통계당국의 발표는 충격적이다. 똑똑한 일자리가 없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지워진 전세 또는 월세부담이 아리도록 무겁다. 내 집 장만의 꿈과 취업의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이 여기서 더 늘어나면 정말 큰일이다, 이미 사회적 긴장감은 겁나게 탱탱하다.

2000년대 초입 10년에 한국경제가 '부동산에 속고 실업에 우는' 비극 속으로 빠져 들지 않으려면 누구보다 정부가 훨씬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이종대 전 대우자동차 회장 서울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