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회를 먹으며 100여년전에 만들어진 축음기를 통해 옛날음악을 듣는 일.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런 일이 울산시 북구 강동동 풍년횟집에서 3년전부터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바닷가에 자리한 오래되고 허름한 집에 간판도 엉성하게 달린 이 횟집의 대표인 서태우씨(46)가 지난 2000년부터 골동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손님들에게 먹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을 더해주자는 의도에서 식당 안에 오래된 축음기들을 들여놓았다.

 손님들이 "이 축음기 소리나요"하고 관심을 가지면 어깨가 으슥해져 얼른 꼬질꼬질하게 때묻은 포장지에 감싸인 SP(Standard Play)판을 꺼내 노래 한곡을 들려준다.

 "단순하게 손님들에게 볼거리를 주고 싶어 골동품을 몇점 들여놓았는데 의외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중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축음기로 노래를 들려주면 대부분의 손님들이 즐거워하죠."

 서태우씨는 축음기를 전문적으로 수집하거나 음악을 대단히 좋아하는 마니아는 아니다. 골동품 마니아라 할 수 있는 매형의 영향을 받아 약간의 관심을 갖고 있는 수준이다. 음악에 대한 특별한 소양을 갖고 선별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손님들에게 볼거리를 준다는 생각이 전부다. 음향도 엉망이다. 색다른 형태의 오래된 축음기에서 적당히 섞여나오는 잡음이 호기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도다.

 손님들도 양식도 아닌, 회를 먹으러 온 지라 음향이 뛰어난 이름난 축음기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오히려 시끄럽다고 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찌지직거리는 잡음이 가득한 100여년전의 소리에는 대부분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대개 CD가 나오기 전에 바늘을 올려놓고 감상에 젖었던 LP판의 그 불량한 음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태우씨가 갖고 있는 음향기기는 현대식 축음기가 나오기 이전의 뮤직박스인 영국제 시리온과 상자 형으로 된 그라마폰사의 축음기, 또 흔히 보아온 나팔꽃 모양의 혼(horn)이 달린 그라마폰사의 축음기 등 너냇점이다. 150~80여년전에 나온 제품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뮤직박스는 SP판을 거는 축음기가 아니라 작은 홈에 패인 얇은 철판을 세워 걸고 떨림에 의해 음향을 재생하는 기기다.

 축음기 뿐아니라 오래된 카메라,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아이를 업고 다니는 나무통과 맑은 소리를 내는 인도네시아 전통 북, 손을 파낸 장식이 돋보이는 웃다지 농, 183㎝나 되는 인도네시아 도자기, 필립스사의 초기 라디오 등도 식당 안에 전시돼 있다. 카메라와 축음기 등 몇가지에는 "손대지 마세요"라는 글을 붙여 두었지만 다른 것들은 손님들이 만져보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서태우씨가 이런 골동품을 전시하기 이전에도 풍년횟집은 자연산 회만 취급하는 "고집있는" 집으로 이름나 있다. 날씨가 않좋아 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이 며칠만 계속되면 고기가 없어 가게 문을 닫고 만다. 일기가 고르지 않은 여름철에는 고기가 없어서 못파는 날이 많다. 이런 면에서는 유난히 싹싹한 그의 부인 씨도 똑같이 고집스럽다.

 이들 부부가 이 곳에서 횟집을 시작한지는 10년 남짓. 4대째 살고 있는 이 집에서 태어나 학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진데다 부모의 건강이 않좋아지는 바람에 모든 걸 접고 가족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바닷가에서 할일이라고는 고기 잡는 일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는 배를 탔으나 고기 잡는 일로는 생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아 횟집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자연산인 바닷가에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산"이란 말의 의미도 모른 채 양식 고기로 횟집을 시작했죠. 그런데 손님들이 자연산은 없느냐고 묻더라구요. 3년여만에 다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죠."

 서태우씨의 회를 다듬는 솜씨도 각별하다. 그의 표현대로 하면 "소박한" 그의 칼질은 엉성해 보이지만 신선하면서도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충분히 살려낸다. 고기도 다양하지 않고 위치도 좋은 곳이 아니지만 단골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들 부부의 9년 외고집 덕이다.

 이제 색다른 취미를 갖게된 서태우씨는 골동품 전시장을 갖춘 넓은 새집을 가질 날을 꿈꾸고 있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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