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는 다른 겨레와는 달리 가족의 관계를 엄격하게 유지하고 그 관계를 나타내는 말 또한 복잡하고 엄격하게 사용해 왔다. 그래서 친족어의 호칭 또한 엄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가족 관계가 대가족 사회에서 핵가족 사회로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그 친족어 또한 단순화되거나 아니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가정언어가 일반 사회언어로 바뀌는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언어 질서가 무너지면 인간 관계의 질서도 무너지게 된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친족어에는 상대를 부르는 부름말인 호(呼)와 상대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걸림말인 칭(稱)이 있다. 이는 친족어에 관계를 나타내는 말과 부르는 말이 달랐음을 의미한다. 즉, 삼촌은 걸림말, 작은아버지는 부름말이다.

한자어이긴 하지만 남자의 동기 혈족을 형제(兄弟)라 하고, 여자의 동기 혈족을 자매(姉妹)라 한다. 영어에는 손위와 손아래를 구분하지 않고 남자 여자만 구분한다. 말레이어는 남녀 손위 손아래도 구분하지 않고 한 낱말로 형제를 나타낸다. 어쨌든 우리는 남자 손위를 형(兄), 손아래는 제(弟)라 하며, 여자 손위는 자(姉), 손아래는 매(妹)라 한다. 그리고 결혼하면 형의 아내는 형수(兄嫂), 동생 아내는 제수(弟嫂), 누나 남편은 자형(姉兄), 여동생 남편은 매부(妹夫), 매제(妹弟)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자형'을 '매형'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누나를 나타내는 자(姉)에 거꾸로 여동생을 나타내는 매(妹)를 쓰고 거기에 또 형(兄)을 붙여 매형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서울 중부 지역에서 쓰던 '매형'이라는 잘못된 말은 이제 쓰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역사용어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일합방'과 '독립'이라는 용어가 있다. '한일합방'이란 뜻은 '한국이 일본과 나라를 합했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일한합방(병)'이라 한다. 그들에게는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앞서서 일본과 나라를 합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독립'이라는 말 또한 엄격히 보면 잘못 쓴 말이다. 독립의 뜻은 어떤 두 대상이 서로 합의(동의) 하에 같이 있다가 한 쪽이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립 이전의 상태를 인정했을 때 적절한 말이다. 아버지와 자식이 사업을 같이 하다가 아들이 능력이 되면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한일합방과 독립은 서로 앞뒤가 맞는 말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 나라를 합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빼앗겼다. 그래서 한일합방이 아니라 '경술국치'이며 그 시대는 '나라잃은시대'가 된다. 그러다가 우리는 빼앗긴 나라(光)를 되찾았기(復)에 '독립'이 아니라 '광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독립되던 그 날을 일본은 우리와 거꾸로 '국치일'이라 한다. 이제는 '한일합방'과 '독립'이라는 말보다 '경술국치'와 '광복'이라는 말을 쓰도록 하자.

그 외 많은 근현대 역사용어들도 올바른 말로 바꾸어야 한다. '광주난동(폭동)'이 '광주사태'로 '광주사태'가 다시 '광주민주화의거'로 사건의 이름이 바뀌어 갔다. 이것은 바로 역사적 사건을 지칭하는 이름 속에 그 사건의 의미와 가치와 그 사건을 보는 눈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말의 힘이요, 역사이며, 올바른 '역사바로찾기'의 시작이다.

임규홍 경상대 교수 국문학·진주

(그 옛날 울산토박이들은 태화강을 '태홧강'이라고 발음합니다. 맑고 아름다웠던 그 '태홧강'은 울산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칼럼 '태홧강'은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 한켠에 울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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