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에서 울산에 온 사람에게 울산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하고 물어보면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공단과 공해가 떠오른다고 한다. 너무나 삭막하게 느껴져 다른 것은 없습니까?하고 물어보면 월드컵 개최도시와 고래고기라는 대답이 주를 이룬다. 월드컵 개최로 공해도시라는 이미지는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이런 대답을 들을 때 마다 울산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태화강의 멱 감던 추억, 그리고 십리대밭의 아름다움, 정자해변과 방어진 대왕암의 절경 등 울산은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특히 요즈음과 같은 음력 8월이면 옛날이 더 그리워 진다.

 음력 8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추석이다. 어릴 때는 물론이고 장년이 된 지금도 추석이니 한가위니 하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어린시절, 바지는 물론이고 운동화(베신)도 덕지덕지 꿰어 신고 다니다 추석이 되면 새 옷, 새 신발을 얻어 신을 수 있고, 평소 맛보지 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그 기다림은 나이가 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 보지 못한 친척들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친척들이 건네주는 용돈을 받는 즐거움이 있어 한달 전부터 손 꼽아 기다리던 날이 추석이었다.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 가정 경제권을 쥐고 계신 할머님의 얼굴만 쳐다보며 오늘은 데리고 가시나 내일은 데리고 가겠지 하며 시장에 갈 날만 가슴 졸이고 있는데 추석이 다가와도 아무런 기척이 없어 서운했던 적이 한 두번 아니었다. 추석전날 나와 동생을 불러놓고 시장 갈 준비를 해야지 하면 우리는 그 동안의 설레임이 기대로 바뀌고 우리는 할머니 보다 먼저 옥교동 중앙시장을 향해 달렸다. 그 곳에 가면 친구 어머니, 아버지가 장사를 하고, 친척들이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낯설지 않고 포근하고 재미있는 곳이었다.

 청년기에는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젊음의 거리가 있어 색다른 기쁨이 있었다. 음악다방에서는 신청만 하면 멋진 폼을 잡은 DJ가 아가씨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친구들과 맥주집에서 만나 나눈 개똥 철학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이런 쉼터에서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누고 선남선녀들은 풋사랑을 키우며 젊음을 보냈다.

 그런 곳이 중앙시장이기에 내 아이의 설이나 추석 빔은 꼭 내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중앙시장을 찾았으며, 꼭 맛난 음식도 사주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백화점을 고집해도 못들은 척 딴청을 피우며 중앙시장을 찾아 반 강제적으로 옷과 신발을 사 입혔다.

 90년대 초까지 번성하던 중구상가와 중앙시장도 마이카 시대의 교통혼잡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중구 상권이 대형백화점과 할인점으로 이동되고, 주거지도 급격하게 이동되면서 점차 쇠퇴하고 주 상권이 남구로 이동되면서 울산 유통 시장의 균형 발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성남동, 옥교동은 같은 울산 시내인데도 왠지 마음이 푸근해 진다.

 이 울산 중앙시장이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재건축이 진행 중에 있다. 시계탑도 복원 되었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공사도 쉼 없이 진행되고 있고, 시장 또한 백화점과는 색다른 재래시장의 특성과 편의시설, 주차공간 등 많은 부분이 갖추어지고 있다 한다. 중구의 중심가에 새로이 우뚝 설 중앙시장의 영업재개를 앞두고 새로운 모습으로 활기를 찾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중구상권 활성화와 울산시의 균형발전을 위해 또한 재래시장 활성화를 옥교동 중앙시장에서 찾는다고 하면 한 개인의 비약적인 생각이고 시대상황이나 경제논리에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웃과 가족 친지들의 오랜 생활터전이었고 지금도 그러한 상황을 재래시장 곳곳에서 보고 느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어쨌든 내년 추석때는 제삿상에 올릴 음식 장만을 위해 나도 집사람과 같이 중앙시장으로 가 이것 저것 구경하며 장바구니나 들어 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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