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읽었던 위인전을 어른이 된 지금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특히 흥미를 끄는 부분은 위인들의 성장과정에서의 차이다. 한국과 외국 위인들의 성장과정에서 보이는 확연한 차이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한국의 위인들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천재적이다. 즉 지덕체를 모두 갖춘 사람으로 묘사되고, 외국의 위인들은 이와는 다소 다르다.

또 우리나라 속담에는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고. 외국에는 이와 유사한 'As the twig is bent, so grows the tree(나무의 어린 가지가 구부러지면 나무도 그렇게 자란다)'라는 속담이 있다. 내용상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두 속담이 전하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의 속담은 어릴 때 모습이 이미 성인의 상태를 결정되게 된다는 것이고 외국의 것은 어린시절의 양육태도나 환경에 따라 성인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될 만한 사람만 계속 밀어주고, 외국은 가능성을 최대한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특성이 짧은 시간에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만의 저력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성과 가능성을 키우는데, 다소 인색한 부분이 있는 문화라는 점을 인정해야하겠다. 이러한 결정론의 문화가 많은 보통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좌절시킨 것은 아닐까. 인간은 다양한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기성사회에서 기대되는 재능과 소질만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정받은 이는 소위 '엘리트코스'라는 지름길을 통해 화려하게 성인사회로 등장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무시되거나 소외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가능성을 매장당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경상일보-사회복지포럼 공동기획
이처럼 일반인들도 이런 문화 속에서 차별 아닌 차별을 받고 있는데, 출발부터 불리함을 가지고 가야하는 장애인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정신장애인의 사회복귀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이제 '이런 문화는 버리자'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보다 충분한 시간과 여건을 만들어 주어 누구나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이가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안 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능력에 따른 차이가 아니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가치관이 다양화돼 연예인이 최고의 직업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러나 장애인 특히,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보다 생산적인 일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들에게 능력의 증명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떡잎'이 부실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신장애인들도 나름대로의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고 꿈과 희망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일반인들과 똑같은 조건과 환경 속에서 능력을 검증하려니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에 맞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 한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속담만을 증명할 뿐이다.

이제 우리의 건강함은 조금 다른 떡잎이라도 환경에 따라 충분히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열려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기다리고 믿어주며 박수쳐 주면 정신장애인도 한 몫의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열린사회에서 정신장애인도 그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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