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장부인 뉴욕 소재 세계무역센타가 가미가제식 비행기테러로 붕괴되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몰사 당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무심한 것이 세월이라 부지불식간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만 것이다. 지구반대편에서 발생한 참사를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신문을 보고 알게 된 후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비행기 충돌의 직접적인 여파로, 화재로, 건물붕괴로 인하여 추락하여, 질식하여, 불타 죽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인간으로서 쓰라린 고통을 느낀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이와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9. 11 테러가 미국의 대외정책담당자와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왜 테러주체들이 다른 다양한 외교적 수단을 외면한 채 이와 같은 테러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결국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기회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빌어 마지않았다.

 미국내에서도 노옴 촘스키같은 양심적 지식인들은 9. 11 테러의 이면을 직시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 스스로의 반성과 함께 힘만을 내세우는 외교정책의 재고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9. 11테러를 베트남전 이후 느슨해져만 가는 미국의 국가의식을 재무장할 기회로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였고 이에 편승한 언론은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압도적으로 군사적 응징에 힘을 실어주도록 유도하였다. 그 결과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우방을 동원하여 9. 11 테러의 배후임이 분명하다고 정보분석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인 알 카에다가 집권세력인 탈레반 정권의 비호아래 둥지를 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적 응징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의 대응이 적절하였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아쉽기만 하다. 9. 11 테러로 인한 희생자는 무고하게 죽어간 세계무역센타의 사람들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죽어간 사람들의 수십, 수백배 되는 이름없는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진격으로 인해 죽고, 다치고, 생존의 터전을 상실하였다. 9. 11 테러의 참상을 지켜 본 많은 미국 국민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보도를 들었다. 그러나 피해자는 이들뿐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9. 11 테러와 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세계인들은 더욱 더 미국의 힘에 대한 공포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른 문제해결 방식에 위기감을 느꼈으리라 본다.

 더구나 피를 나눈 동족이지만 구시대적 이념에 근거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세계에 유일한 우리의 분단 현실에서 9. 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대처방식은 하나의 시금석으로서 더욱더 주시되어야 할 부분이었다고 본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국민들의 생존은 전혀 무시한 채 자신들만의 국가적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자국 및 세계의 여론몰이를 통한 무차별 군사력 동원이라는 방식을 택한다면 시간문제일 뿐 결국은 우리 미래도 미국의 국가적 목표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에 의거한 무조건적 정의를 앞세우기 전에 강한 자에게 요구되는 겸손과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정당한 찬사를 향유해야 할 부분은 미국 스스로의 몫이라는 점에서 9. 11 테러가 단순히 테러주체의 일방적인 정치적 목표달성을 위해서 감행된 것이라는 시각은 문제를 너무 간과한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약소국에 대한 고압적인 대외정책에 대한 울분의 표시이며 세계 초일류 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바람직한 역할과 자세에 대한 재고의 기회로서 의미가 부여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견지에서 우리에게도 매향리 미군 사격장 문제, 노근리 양민 학살 문제,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 접근이 아쉬운 것이다. 더구나 최근의 세계여론도 미국으로부터 점차 등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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