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칭찬과 찬사 인간관계 윤활유 역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실과 배려 깃들여야

인간은 누구나 잘 살고 싶고, 출세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DNA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렇게 타고 난 DNA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하는 사람은 후덕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지만, 윗사람의 눈치를 살펴 비위를 잘 맞추고,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아부를 잘해 출세를 하는 사람은 두고 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욕을 먹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이러한 현상은 동양의 유교적 전통에 의한 폄하이지, 현대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적절한 칭찬과 찬사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질의 아부가 있는 반면에 고질의 아부도 있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에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든지, "우리 대통령은 하늘이 점지하신 어른이시다"하는 말은 전자에 속하고, 어느 정치인이 "나는 국민의 지혜를 믿고 여론에 따라 결심한 것은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했다면, 이것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뛰어난 정치인들은 대부분 유권자에 대한 아부의 달인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말을 할 때 누구나 다 아는 상투적인 말을 사용하면 아부로 들리기 쉽다. 남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지만 칭찬받는 대상자만이 알고 있는 미세한 부분이나, 그가 미처 인지하고 있지 않은 사실을 찾아내서 확인해주면 아부가 아니라 진지한 배려로 들리고 진심으로 좋아한다.

이런 사례도 있다. 어느 신년 하례회에 참석한 젊은 정치인이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나타났다. 악수를 하는 사람마다 모두들 "어쩌다가 그랬느냐?" "이 바쁜 때에 눈이 불편해서 어쩌느냐?"하면서 인사를 해오니 듣는 사람은 해명을 하느라고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때 어느 한 사람이 "00님, 복잡한 세상 한 눈으로 보시니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볼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는 상대를 기분좋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일목요연'을 맛깔스럽게 써먹어 주위 사람들에게도 센스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효과를 얻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일깨워주고, 자기의 미흡한 부분을 인정해주면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이런 시의적절하고 의미있는 칭찬을 잘하면 "저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하면서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찬사에는 처음부터 윗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어야지 하는 아부의 마음이 숨어 있어서는 안된다. 사심(私心) 없이 우러나오는 진실성이 담겨 있는 말이어야 한다.

여하간에, 아부는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고, 칭찬도 마찬가지로 최종적 숨은 목표는 자기가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는데 있다면, 아부와 칭찬은 무엇이 다른가?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위해 일할 사람이군!' 하고, 흐뭇한 느낌을 받았다면 이것은 아부인가? 아니면 칭찬인가?

김영길 전 성동고 교장 서울

(그 옛날 울산토박이들은 태화강을 '태홧강'이라고 발음합니다. 맑고 아름다웠던 그 '태홧강'은 울산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칼럼 '태홧강'은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 한켠에 울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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