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은 바다를 건너온 도래인이라는 주장과 울산 토호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나란히 대두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울산시지회(지회장 한분옥)가 14일 오후 4시 태화호텔 회의실에서 "처용과 울산의 해양문학"을 주제로 마련한 제2회 울산문학과 환경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김경수 중앙대 교수(국문학)와 양명학 울산대 교수(국문학)는 미리 나온 주제발표문에서 처용에 대해 이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김경수교수는 "삼국유사의 망해사 처용랑 조는 헌강왕 시대의 서사시로 주인공은 헌강왕이며 처용은 헌강왕 주연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 단역배우에 불과하다"고 전제하고 "처용은 개운포를 통해 들어온 도래인(渡來人)"이라고 규정했다.

 헌강왕 일행이 개운포에 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때마침 이 곳을 통해 들어오던 외래인들이 헌강왕 일행과 대결하게 되고 소규모 외래인 무리는 대규모 왕의 일행과 대적할 수 없어 타협의 방법으로 처용을 왕에게 바친 것으로 보아야한다며 역사적으로 석탈해, 허황후, 혁거세, 김알지 등도 도래인 또는 천강인(天降人)들이라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김교수는 또 망해사의 창건과 관련해 불교 신앙의 포교를 위한 것이라는 기존 주장에 국토 방어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양양의 진전사, 낙산사, 등명 낙가사, 감은사, 기림사, 석굴암, 망해사 등 우리나라 바닷가에 있는 사찰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수십 수천명이 매복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라는 비슷한 구조와 지형을 하고 있는데 이는 신라의 사찰들이 바다를 통하여 침입하는 외적을 퇴치하기 위한 국방상의 필요로 창건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신라 때의 대표적 호국사찰인 감은사-이견대-대왕암과 마찬가지로 망해사-망해대-처용암이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는 것도 그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양명학 교수는 "대부분의 신화와 설화도 결국은 그 지역의 아득한 옛날의 역사에서 바탕한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처용은 신라 헌강왕 시대에 울산에서 살았던 실존인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교수는 헌강왕과 용의 만남을 쇠약해진 왕실과 부강해진 울산의 토호간의 대립으로 해석한 이우성교수의 주장을 긍정하면서도 처용의 아버지가 울산의 특산물인 철과 소금 등의 수출과 관련된 국제무역을 해서 막강한 부를 축적한 울산의 토호로 추정하는 발전된 주장을 내놓았다.

 또 처용이 경주로 간 것은 적대적 대치 관계로 인한 볼모가 아닌, 친화적 화합관계에 따른 파견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주로 간 처용은 아름다운 울산을 그리워하며 밤드리 노닐었을 것이고 추악한 경주를 떠나고 싶어했기 때문에 아내와 역신에 연연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양교수는 처용은 "인간적· 지상적인 추악함에서 떠나 관용과 화합의 천상적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가려는 멋진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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