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학입시 수험생들의 계열별 지원결과가 자연계 지원율 27%, 인문계 지원율 56%, 예체능계 지원율 17%로 나타났었다. 이공계통지원자가 예체능계 지원자 숫자와 거의 비슷하고 인문계의 절반에도 못미친 결과였다. 이공계를 지원한 27%중 그나마 우수학생들은 대부분 의학·약학·한의학과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에 충격을 받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 하나가 과학기술계통의 대학졸업생들중 우수한 사람들에게 외국유학경비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정책의 효과에 대해 찬반 양론이 팽팽하지만 필자는 이 정책이 예산만 축내고 별 효과없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학이 끝난 후에 우리사회가 이공계를 우대하는 분위기로 선회되지 않는 한 실력 있는 외국유학파 이공계통 인재가 국내에서 직업을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사회내의 이공계통 무시현상을 단적으로 살펴보자. 정부주요조직중 이공계통이 장을 맡는 것이 바람직한 부서가 건교부, 과기처, 상공부, 산림청, 농수산부, 보사부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조직의 역대장관, 청장들의 90% 이상이 이공계통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인 울산광역시도 건설, 환경직 등의 부서장직책을 일반사무직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첨단기술 개발로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정부는 지난해 행정고시로 233명, 기술고시로 41명을 뽑았다. 5대 1의 문과 대 이과 채용 비율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리의 행정고시와 비슷한 일본의 공무원 1종 시험에서는 지난해에 기술계 263명, 사무계 241명을 뽑았다. 오히려 기술계가 많다. 이렇게 "문과 출신"만 대거 등용하는 정부가 "과학기술자를 우대한다"고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폐해가 지금도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정책이 기업의 미래에 큰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주요의사 결정이 이공계통전문가가 배제된 가운데 이루어지다 보니 자연히 일반기업의 CEO들도 정부나 정치 고위직과 선을 댈 수 있는 인문계통이 우선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실력 있는 이공계출신자가 용케 일류기업이나 정부 부서에 채용된다하더라도 곧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여 사법시험준비를 하거나 외국이민을 떠나는 현상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따져보면 온국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IMF금융위기도 정치금융시스템(인문계)의 비효율이 제조업(이공계)의 발목을 잡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그 금융위기에서 제일먼저 감원 당한 계층은 이공계였다.

 왜 이러한 현상이 가능할까. 그 이유는 한 나라나 지자체의 정책이 전문가적 안목에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그때 그때의 시류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정치 사회적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제도와 그 운용의 낙후성에도 근본 원인이 있다.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국민에게 미래 비젼이나 현실을 이겨나갈 합의를 도출할 능력도 별로 없이 정치를 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정치 지도자들을 뽑아준 국민과 이러한 잘못된 정치 분위기를 만드는데 어느 정도까지 좌시한 언론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잘못되었다고 먼저 비판해야할 여론 주도층들도 주로 인문계통이란 것이다.

 한 나라가 진정으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이공계직업이 인기가 있어야 하고 우대를 받아야한다. 더군다나 지금 전세계는 기술개발의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분야도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는 좁고 자원이 없는 나라일수록 이공계통기술인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이공계통기술인이 진정으로 우대 받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에서 또 한번 좌절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울한 미래를 맞이하기 싫다면 사회 각분야에서 이공계통이 홀대받고 있는 근본 원인을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원인이 "우리나라를 실제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각 분야의 지도층인사들이 인문계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고 이들에게 국가의 중요정책결정권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면 즉시 이 것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세워서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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