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남부리는 2일과 7일만 되면 생기가 돈다. 닷새장인 언양장이 서는 날이다. 새벽부터 하루종일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손에는 요긴하게 쓰일 물건이 쥐어진다.

 언양장에는 언양읍민을 비롯해 두동·두서면, 상북면, 삼남면, 삼동면 등 울주군 서부 5개면과 밀양, 청도, 부산에서까지 사람들이 찾아든다. 찾는 사람이 많은 만큼 거래되는 물품도 다양하다. 농산물에서부터 생필품, 먹거리, 묘목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두서면 내와리의 청정 산나물에서부터 각 지역의 특산품이 쏟아져 나온다.

 장사꾼과 물건을 사려는 행렬이 이어지면서 언양장의 경계가 남부리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언양매일시장의 울타리를 넘어선지 오래다. 강변로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노점상행렬은 이제 남천교 아래까지 번졌다.

 우시장이 지난 79년 어음리로 자리를 옮겨 규모가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최근들어 다시 세력을 떨치고 있다. 남부리를 울주군 서부지역의 "심장부"라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부리는 언양 현청의 남쪽마을이라는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조선시대부터 사용돼 왔으며 언양 상권의 중심지로 지금껏 맥을 이어오고 있다. 남천교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경계로 서부리와, 언양읍내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기점으로 동부리와 마주한다. 어음리의 우시장 옆 골목까지 경계를 이룬다.

 주차문제나 교통편의가 비중을 더하면서 상권이 이동했다. 남천교와 언양읍내를 잇는 도로가 언양의 중심도로였을 당시만 해도 이 도로 아래에 위치한 남부1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언양의 중심 상권이었다.

 하지만 교통편의 시설이 시대의 흐름을 뒷받침하지 못한데다 시외버스터미널이 현재의 남부2리로 옮겨가면서 침체된 상권의 "변방"으로 전락했다. 뿐만아니라 언양읍을 이루고 있는 4개리 가운데 가장 발전이 더딘 곳으로 꼽히고 있다.

 이같은 발전지체는 "30년째 계획뿐인 소방도로 개설"이 가장 큰 원인이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도로는 수십년전 자연마을이 형성된 형태 그대로여서 차량 1대 통행도 힘겨운 상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진입하면 막다른 곳에 이르러 낭패를 보기도 한다.

 김준길 남부1리 이장은 "소방도로개설이 계획만 세워진채 방치되는 바람에 수십년째 토끼길같은 도로를 그대로 사용하고 주택도 올망졸망한 60~70년대 형상을 하고 있다"며 "소방도로계획이 들어 있는 가구나 그렇지 않은 가구 모두 다 소방도로 개설 후에 증·개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를 몰라 속을 끓이고 집이 허물어져 가도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소방도로 개설은 선거공약 단골 메뉴로 등장할 정도로 주민숙원사업 1호다. 30년째 계획뿐이던 소방도로 개설이 올 상반기 지방선거 이전에 잠시 시작되는 듯 보였으나 선심용이었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언양꽃화원 앞 1가구만 헐고 4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추가공사가 그후에는 없었다. 주민들의 분노는 "폭발직전"이다.

 도로변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태씨는 "상권이 위축될대로 된 상태여서 주민들은 그나마 소방도로개설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공사를 착수하면서 1가구만 뜯고 그대로 둔다는 것은 주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흥분했다.

 골목이 좁다보니 주차문제도 심각한 수위를 넘어섰다. 아예 마을 중심으로는 차량을 운행할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이다. 교행이 이뤄지지 않아 이장을 찾아 차를 빼달라는 방송이 하루에 몇번씩 방송된다.

 김준길 이장은 "차를 빼달라는 방송을 수없이 했지만 아직 큰 실랑이 한번 없었다"며 "토박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만큼 주민들은 마을 속사정을 서로 잘 알고 있을 뿐아니라 아직까지는 이웃간의 인정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부2리는 남부1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번화한 상가가 언양매일시장과 이어져 있어 늘 인파가 북적인다. 언양매일시장은 5일장과 별개의 시장은 아니지만 어물전 잡화, 채소, 건어물, 과일가게, 식당 등이 들어선 상설시장이다.

 입으로 전하는 소문이 무성한 곳이기도 하지만 반면 시장 특유의 걸죽한 인심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상가를 운영하는 권미숙씨는 "상인들끼리의 단합은 그 어느 곳 못지 않다"며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사 오거나 상부상조하는 거래를 하지 않으면 눈총이 따가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상인들끼리 똘똘 뭉쳐있다"고 말했다.

 남부2리의 대부분 지역은 상가지만 경부고속도로를 경계로 어음리 방면은 전혀 다른 풍경을 보인다. 아직까지 비어있는 땅이 많다. 띄엄띄엄 식당을 운영하거나 아직 미나리꽝을 그대로 경작하고 있다. 개발이 가능한 곳이지만 땅값에 비해 투자가치가 낮아 소유주들이 때를 기다리는 곳이다.

 남부리는 시장통을 낀 번화가지만 1, 2리를 통틀어 아파트와 빌라가 한곳도 없다. 고층건물이래야 상섬생명이 영업을 하고 있는 시장 옆의 7층짜리 부일빌딩이 고작이다. 땅값은 비싸지만 소방도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아 주거환경으로는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주차공간을 위해 200대 분량의 남천둔치 주차장을 마련했지만 매년 폭우나 태풍때마다 침수 피해를 입고 있어 제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