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사회적 활동 자부심
도시락·비누·제사음식·김치판매등
자립지원형 노인 일자리 지속 발굴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갈수록 거세다. 고령화 사회의 복지정책 중 하나인 노인 일자리 창출이 이제 우리 사회의 발등의 불로 떨어진 셈이다.

노인들이 일자리를 바라는 것은 일에서 얻는 보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이유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의 노후 소득 보장체계가 미흡한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또래의 노인들이 세상살이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소외받지 않고 인생을 즐기는 존재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현재 정부가 일하기 원하는 노인들을 위해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노인 일자리의 유형은 '공익형'과 '교육형', '복지형', '인력파견형', '시장형'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들 일하는 노인들을 유형별로 찾아가 본다.

26일 오전 울산시 중구 태화동 희망도시락사업단에서 만난 강기심(76) 할머니는 "회사원인 손녀에게 나도 어엿한 직장여성이라고 얘기한다"며 "일이 재밌기만 하다"고 말했다.

지역 결식아동들에게 전달하는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는 희망도시락사업단에서 일한 지 5개월째 접어든 강 할머니는 "일을 하다 보니 시간도 잘 가고 아픈(10년 전 인공심장수술을 했음) 것도 잊어버린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다"고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옆에서 한참 작업중이던 다른 할머니들도 "집에서 놀면 뭐하노. 일하는 재미도 있고 또 손주, 손녀에게 용돈도 줄 수 있어 좋고, 얼마나 재밌는지 모르겠다"며 거들었다.

희망도시락사업단은 지난 2005년 9월부터 출장뷔페, 공부방 등의 도시락배달 사업과 새터민축제를 통해 소득을 창출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울산 북구청의 급식(결식)아동도시락지원서비스 운영기관으로 선정돼 매일 300개 이상의 도시락을 제작, 배달하고 있다.

이 곳에서 50곒쯤 떨어진 곳에 희망비누사업단이 있다. 사업장에 들어서자 4명의 할머니들이 황토비누, 율피비누 등 각종 원재료를 이용한 천연비누를 만든다고 열심이다. 할머니라 하기에는 너무 젊어보여 아줌마라는 표현이 제격인 듯 하다.

들어서자 첫 마디가 "경상일보에서 왜 또 왔노"이다. 시니어클럽이나 사업단만 소개했지 정작 이 곳에서 만드는 천연비누는 왜 소개해 주지 않느냐는 불만이다. 비누가 작게 팔려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푸념이다. 비누를 판 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빗댄 농담이다.

"시중에 파는 화학제품을 사용한 비누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천연재료만을 사용해 무좀이나, 아토피 등 각종 피부병에도 그만이다"라며 제품 광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뒤늦게 달래기에 나선 이월연(72) 할머니는 "비누도 많이 팔리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기술도 익히고 배운 기술로 남을 가르치기도 한다"고 자랑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규원(73), 전옥희(69), 박경희(67) 할머니도 한 수 거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야. 아직 이팔 청춘"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이들 할머니들은 스포츠댄스와 풍물, 노래 등의 취미활동도 열심이라고 옆에서 귀띔한다.

역시 2005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희망비누사업단은 지난해 보조금 지원없이 체험행사 전문참가 등을 통해 연 11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올해도 천연비누 제작과 체험행사 진행을 통해 자립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다.

도시락사업단과 비누사업단은 울산 중구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대표적 시장형(자립지원형) 노인 일자리사업이다. 시장형 일자리사업은 노인들이 공동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창출되는 다양한 업종의 사업단 운영을 통해 확보되는 일자리로 가장 권장되고 있는 사업 유형이기도 하다.

조정환 중구시니어클럽 실장은 "노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일자리는 고정적으로 독립적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라며 "노인들 스스로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자아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자리의 중요성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중구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장형 지원사업단은 고유사업으로 제사음식판매·배달사업(제례음식전문점 '얼')과 김치·반찬 가공 및 판매사업(희망김치 운영), 희망도시락사업단, 희망비누사업단이 있다. 이들 고유사업은 별도의 보조금 없이 자립해 운영되고 있다.

또 과수원 운영 및 영농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아름사업단을 비롯해 희망콩나물사업단, 희망배달사업단, 실버헬퍼사업단, 인력파견사업단 등 5개 사업단은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다.

지난 해 시니어클럽을 통해 일자리를 찾은 노인들은 200명 가량이다. 올해는 380명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시장형 사업은 특히 올해부터 시작되는 희망배달사업단 처럼 기존 사업과 연계된 일자리 사업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형욱기자 shin@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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