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취임 후 일본경제는 바닥 탈출을 선언하고 국정의 초점을 경제회복에 맞추어 불황탈출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최근 생산과 수출이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불황 탈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으나, 소비와 내수 및 설비투자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어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도 아직은 많다. 일본을 연구하는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경제가 혁신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경우, 산업 공동화 현상이 지속되고 이에 따라 고용 인력 감소, 소득감소, 경제 성장 침체 등의 악순환 고리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우리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장기침체를 드러내 놓고 좋아하기는 어려워도 빙그레 웃음을 띠며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를 예견하는데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게 가볍게 보기에는 아직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본은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세계 제2의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는데다, 고가이면서도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내수규모 또한 거대하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 생산을 위한 투자와 노력에 대한 회수가 용이하다는 강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강점은 산업간 수직, 수평 분업이 잘 되어 있는 점과 산업간 연계성도 다른 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 소니와 토요다 등과 같은 다수의 세계적인 업체들도 건재하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최근 일본 기업들은 장기불황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합병과 사업 통합, 기술적·전략적 제휴 등을 활발히 추진하고 잇다. 대형 합병·사업 통합 붐은 2차례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일본이 성공한 산업으로 자부하던 분야에서 강자간 연합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울산의 주력산업인 조선에 대응하기 위해 히타치조선과 NKK 조선부문 등의 통합 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토요다자동차는 아직도 세계에서 건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일본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각 산업별로 업계 재편, 자체 구조조정이 활발히 추진되어 왔으나 아직도 미흡한 수준임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의 박차를 가해 기초체력을 튼튼히 해야 한다. 특히 협소한 시장에서 다수업체가 과당 경쟁하는 분야에서는 생존을 위한 최소 시장 규모인 임계시장규모(Critical Mass) 구축이 필요하다. 산업간 연계성도 현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업 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정부차원에서도 업체간 합병이나 사업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와 제도를 완화하거나 통합을 촉진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합병이나 통합은 정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민간기업이 자발적으로 통합·재편을 추진할 수 있도록 조건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기존 산업이 무조건 경쟁력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탈피하고 기존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첨단 신 산업의 적극적 육성도 필요하다. 국내 기업과 산업이 일본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으나, 반도체, 휴대 단말기 등 일부 IT 분야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국내 산업과 기업은 엔화 환율의 등락에 희미가 교차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