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맞으면서 인류의 공통된 화두 중에 하나가 바로 노인문제다.

경로효친 사상을 잘 계승해 온 우리네 정서로는 입 밖에 내기 불편한 이야기이나 극단적인 사회학자들은 노인인구의 폭발이야 말로 인류의 대재앙이 될 지도 모른다고 서슴없이 경고를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늘어나는 노인인구 중에서 치매(dementia·정신이 없어지는 것이란 의미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나 중풍 환자들이 자꾸 늘어난다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잃으며 살고 있다. 얻은 것은 내게로 오는 순간부터 잃어버릴 수 있음을 우리는 각오한다.

잡다한 물건들은 물론 금전이니 명예니 하는 것도 잃어버릴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도 잃어버리게 되고 종종 건강도 잃어버리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느 것의 상실보다도 가슴 아픈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건강을 잃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어 행복한 노후니, 노후의 행복이니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만다.

오래 살게 되면 얻는 것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게 된다. 이것이 노년의 숙명이다. 잃어버리고 헤어지는 것에 익숙해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노년기에는 항상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준비란 준비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늘 하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 준비의 끝은 나 자신의 행복한 귀천(歸天)을 준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만은 나는 부정하고 싶어진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으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천상병님의 귀천의 한 구절)까지 내 육신을 지배해 줄 정신만큼은 잃어버릴 수는 없다는 강한 부정이 화석처럼 내 안으로 들어오기를 갈구한다.

사대육신(四大六身)이 정신의 지배를 받고 산다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이제 완연한 봄을 맞을 채비에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켠다. 지천으로 돋는 파란 새싹을 쳐다보며 오늘 아침 내가 걸어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내 스스로 먹을 수 있고 내 의지대로 배설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옛 친구를 만나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 이후의 인생계획을 나름대로 세울 수 있는 사고가 가능하다면 그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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