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의 크고 작은 길들은 모두 강을 따라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노라면 여러 기의 탑을 만나게 된다. 굽이도는 강가에, 강이 보이는 언덕에, 들판 한 가운데, 맑은 내가 흐르는 마을에 탑이 서 있다.

 영양 답사는 즐겁다. 산골 동네라 하늘이 가깝고 숲이 많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멋진 풍광을 만들고 골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맑다. 햇살이 눈부시다. 별이 총총하다. 고추밭, 담배 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듣기에도 좋은 일월산이 있다. 무엇보다 곳곳에 유서 깊은 종택들이 버티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영양의 초입부터 넘실대는 강을 만난다. 반변천이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에 있는 봉감 모전 오층석탑을 찾아가는 길도 이 반변천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무심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심심 산골 굽이도는 산모롱이를 돌아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차 한 대 겨우 들어가는 좁고 가파른 길이다. 천천히, 느리게, 고양이 걸음으로, 아다지오와 라르고로.

 강이 휘돌아 반달처럼 굽어진 마을 밭 가운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봉감 모전 오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봉감 마을은 예전의 동네가 아니다. 번듯한 시골 마을은 없어지고 겨우 몇 가구만 남았다.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그래서일까? 모전 석탑도 예전의 장대한 맛이 조금은 가신 듯하다.

 멀리 보이는 산과 강 언덕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배경은 봉감 모전 오층석탑만이 만들어 내는 여유다. 부드러움이다. 강가 모래밭에 앉아 바라본 탑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세련된 모습이다.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다.

 영양의 초가을 햇볕은 쨍하게 찬란하다. 국보 제187호로 지정된 봉감 모전 오층석탑은 푸른 하늘을 이고 온몸으로 햇살을 받아 살아 있다. 11.3m에 이르는 높이도 그러하지만 담배 밭과 고추밭에 둘러싸여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여간 웅장하지 않다.

 모전 석탑은 돌을 벽돌처럼 잘라 쌓은 석탑이다. 흙을 전으로 구워 쌓은 전탑의 형태를 모방한 것이다. 봉감 모전 오층석탑은 우리나라에 몇 기 남아 있지 않은 모전 석탑중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탑이며 모전 석탑의 축조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경북 북부 지방은 전탑의 고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그 지방에 전탑이 많다. 그 영향을 받아 모전 석탑이 세워졌을 것이다. 모전 석탑 또한 경북 북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봉감 모전 오층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천하는 중간 단계의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비교적 무른 수성암을 잘라 정교하게 쌓았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기단부에 오층을 쌓고 남쪽으로 감실을 내었다. 감실의 문기둥은 화강암을 다듬어 세우고 문틀도 만들어 공을 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감실이 깊은 걸로 보아 그 안에 부처를 모셨던 것 같다.

 이층 이상의 몸돌에는 층마다 중간에 턱을 둔 것이 이 탑의 특징이다. 돌을 내밀어 띠를 두른 듯하다. 지붕돌은 전탑 양식에 따라 지붕받침은 물론 낙수면에도 층급을 두었다. 돌 빛깔이 불그스레한 것, 검은 빛을 띈 것도 있다. 그건 화강암과 달리 어두운 분위기다. 훤칠한 키지만 그런 돌 빛깔 때문인지 애잔함을 보인다. 그래서 탑을 보러 올 땐 더욱 한낮이 좋다. 해질 녘, 산골마을에 들어서 먼 발치에서 이 탑을 보았을 때 한층 기분을 가라앉게 했었다. 휘휘 돌아 흐르는 강을 따라 봉감 마을로 오려면 한낮이어야 한다.

 흐르는 강 때문일까? 기분이 흔쾌하다. 비 온 뒤라 강물은 넘실대고 언덕의 나무는 푸르렀다. 가을빛을 띈 들판에 선 탑도 슬쩍 황금빛을 품었다.

 봉감 마을을 나오며 뒤돌아 탑을 보았다. 늠름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던 봉감 모전 석탑은 쓸쓸히 우리를 배웅했다. 갑자기 코끝에서 강물 냄새가 났다.

 

 #주변 볼거리

 영양은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이번의 영양 기행은 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현일동 삼층석탑(보물 제610호) 조각이 많아진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상층기단 면석은 8부신중상을, 아래층 기단에는 12지 신상을 새겼다. 1층 탑신에는 사면에 사천왕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아기자기한 맛을 내는 조각들이다.

 현일동 삼층석탑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현이동 언덕에 튼실한 모전 오층석탑(경북 유형문화재 제12호) 한 기가 있다. 높이는 7m이지만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장대함이 느껴진다. 동쪽에 감실이 있고 나무문을 단 흔적이 있다. 문설주 돌에 섬세하고 화려한 당초문이 새겨져 있어 이 탑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알맞은 상승감과 비례를 보여준다.

 화천동 삼층석탑(보물 제609호)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다. 희귀한 조각 수법을 보여주는 탑으로 당대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면석마다 안상으로 테를 두르고 그 안에 천의 자락을 날리며 춤을 추는 듯한 십이지신상을 새겨 놓았다. 위층 기단은 팔부신중상을 새기고 1층 탑신에는 네 면에 악귀를 딛고 서 있는 사천왕상을 새겼다.

 그밖에 일월산 남쪽 기슭에 용화동 삼층석탑이 아담한 모습으로 밭 가운데 서 있으며, 입암면 신구리에도 이중 기단 위에 삼층을 올린 신구동 삼층석탑이 있다. 영양읍에서 북쪽으로 3㎞ 떨어진 삼지리 뒷산 중턱에도 모전 석탑이 있다.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경주를 지나 포항 방면으로 가다 형산강 다리를 지나 안강으로 향한다. 안강에서 925번 지방도로를 따라 기계면으로 들어간다, 기계면의 네거리에서 청송방향으로 31번 국도를 타고 청송읍을 지나 계속 가면 영양읍에 이르게 된다.

 영양군 입암면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가면 병옥리를 지나고 언덕을 넘으면 산해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조금 가면 왼쪽으로 봉감 모전 오층석탑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좁은 길이다.

 입암면 소재지인 신구리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9㎞ 정도 가면 오른쪽에 현리 표지판이 보이고 마을길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가면 현동교가 나오고 길 오른쪽 논안에 당간지주와 함께 현일동 삼층석탑이 있다. 현동교를 건너면 언덕에 현2동 모전 오층석탑이 강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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