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는 동부·남부리와 함께 언양읍을 이루는 중심축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울주군 상북면과 잇닿아 있으면서 너른 들판이었던 곳이 1992년 서부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빌라와 아파트, 식당, 학원, 노래방 등이 즐비하게 들어선 신흥 주택가로 확 바뀌었다. 수도권의 어느 신도시를 연상하게할 정도로 변모했으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다만 빌라와 아파트촌 사이에 아직까지 벼농사를 짓는 빈터가 남아 들판이었던 옛 흔적을 보여줄 뿐이다.

 규모도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97년까지 서부1, 2리와 방천1, 2, 3리의 5개 행정마을이던 것이 최근에 방천4, 5리가 더 늘어났다. 현재 법정 서부리는 총 7개의 행정마을로 이뤄져 있다.

 서부1, 2리는 남천교와 언양초등학교를 잇는 도로를 경계로 남부리와 마주보고 있다. 언양읍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상북방면으로 올라가다 왼쪽편이 서부1리, 오른편이 서부2리. 방천1, 2, 3, 4, 5리는 한국통신공사 언양지점 바로 밑의 사거리를 기준으로 서부1, 2리와 갈라지는 상북면 쪽의 마을이다.

 신흥 주택지로 날마다 얼굴을 달리하는 방천리와 달리 서부1, 2리는 큰 변화가 없는 곳이다. 조선시대 언양읍이 언양현이었을 당시 상북면의 소재지로, 조선후기 언양현을 동·남부나 남·북부로 나누었을때 동·북부리에 속했으나 1914년부터 서부리로 온전하게 자리잡았다.

 도로변을 따라 상가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번화가인 남부리에 비해서는 다소 한적한 느낌이 든다. 한 블록만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여느 시골마을 같은 모습을 보인다. 집집마다 감나무나 엄나무 등이 한그루씩은 갖고 있고 골목은 마을 형성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농촌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만큼 발전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좁은 골목에 수십년째 계획뿐인 소방도로로 인해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지난해까지 20년여년 동안 서부1리 이장을 맡아온 이재선씨(72)는 "말뿐인 소방도로로 비가 새거나 무너진 집을 고치는데도 자진 철거하겠다는 전제조건이 따라야 가능하다"며 "발전에 대한 기대도 없고 주차문제로 상권의 번성도 힘들게 되자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은 대부분 이곳을 떠났다"고 말했다.

 농지를 팔고 장사를 시작한 사람도 많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이재선씨는 "순박하기만 하던 농군들이 장사를 시작해 망한 뒤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을 볼때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며 "이제 서부리에 남아있는 토박이들은 열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했다.

 방천리는 들판 한가운데 집들이 띄엄띄엄 있던 농촌마을이었으나 이제는 빼곡히 들어선 주택 가운데 논들이 "견본품"처럼 남아있는 도시로 성장했다.

 92년 서부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된 후 한동안 개발붐이 숙지막하다가 IMF가 끝난 뒤 부터는 빌라 분양광고 플래카드가 골목마다 사시사철 나부끼고 있다. 10가구 미만의 성일, 신화, 대광, 평화빌라 등 다가구 주택에서부터 40~50가구의 대형 빌라까지 끊임없이 들어서고 있다.

 신흥주택지가 어느 곳이나 그러하듯이 아파트와 빌라, 단독주택이 들어서고 나면 뒤따라 들어서는 오리불고기·돼지갈비식당과 학원들이 이곳에도 즐비하다. 노래방도 상당한 수가 이미 들어서 있다.

 신용주씨(45)는 "계획 택지구역으로 소방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는 데다 아파트나 빌라 중심으로 주택가가 형성돼 젊은층들이 선호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방천2리에 위치한 삼도물산은 한때 2곳의 공장이 풀가동될 정도로 번성했으나 지금은 지퍼를 생산하는 듀론공장만이 남아 있다. 이 공장은 언양읍과 울주군 서부 5개면 출신 여학생들에게는 꿈과 한이 함께 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생산현장이다. 70~80년대 어려운 농촌형편으로 고교진학을 포기한 수많은 여학생들이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던 "관문"으로 주경야독으로 가정을 도우면서 꿈을 키우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포자기한 채 한을 키워가기도 한 곳이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고사리손 10대 여학생들이 직공들의 다수를 차지할 정도였다.

 방천리는 아직까지는 개발이 가능한 빈터가 곳곳에 남아있어 동부리와 함께 향후 언양읍의 배후 주택지로 계속 성장해 나갈 곳으로 꼽히고 있다.

 서부리는 일제시대 남천호안공사가 이뤄지기 전만해도 비만 오면 물난리를 걱정하고, 남천 물줄기가 양쪽으로 흘러 물위에 떠 있는 소똥처럼 보인다는데서 유래한 소똥섬이 있을 정도로 강가마을의 모습을 간직했으나 지금은 강변도로만이 남아 있을 뿐 그 당시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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