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에서 범서로 가는 산모롱이의 험한 층암절벽 길을 "배리끝" 또는 "벼락띠미"라고 한다. 범서면 지역에 속하며, 반천리 살수(米淵)마을 동쪽 산 벼랑길이 곧 이곳이다. 울산 언양간 고속도로와 신설 국도로 인해 1970년대에 폐도(廢道)가 되었는데 태화강 쪽으로 산세가 급경사를 이루어 큰 각도로 떨어지므로 높은 벼랑을 이루고 있어 길이 매우 험한 까닭이다.

 어느 해 여름. 며칠동안 비가 쏟아져 태화강에 물이 넘실댔다. 이 때 한 젊은 농민 부부가 시집가지 않은 누이와 함께 벼랑 아래(배리끝)를 지나고 있었다.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넘칠 듯 남창남창(넘실넘실)했다. 남자를 뒤따라오던 시누이와 올케가 아차하는 순간 그만 발을 헛디뎌 강물 속(벼락소)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큰 비명에 놀란 농부가 뒤를 돌아보자 아내와 누이동생이 한꺼번에 성난 탁류에 휘말려 떠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엉급결에 떠내려가는 옷자락을 잡아채어 겨우 건져내어 보니 아내였다. 한 순간 다시 숨을 돌려 물속을 보았으나 누이는 벌써 저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후로 울산사람들은 이 애처로운 사실을 풍자하여 "모심기 노래"속에 담았다. 황혼녘에 모내기할 때면 구슬프게 불렀다.

 "남창 남창 배리 끝에/ 무정하다 우리 오빠/ 나도 죽어 환생(還生)하면/ 낭군부터 정해야지"

 취사선택을 위해서는 생각하고 판단할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배리끝에서의 이 비극적인 사건은 큰 비에 갑자기 불어난 강물이 그 일차적인 원인이라 하겠지만 자기 아내를 구한 것은 선택적 결과가 아니라 얼떨결에 손에 잡히는 대로 끌어올린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물속에서 떠내려가는 누이동생의 입장에서는 같은 피를 나누고 어린시절부터 함께 살았던 오빠가 올케는 끄집어내주고 자기는 그 오빠로부터 버림받아 죽는구나 생각하여 원통해하는 것이 결코 무리가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는 예부터 홍수설화가 많다. 한발과 홍수가 번갈아 오는 계절풍지대에 속한 우리는 연중 일정기간에 집중되는 강우를 저장 활용하는 환경친화적인 댐 건설로 수자원확보와 재해예방의 물고를 털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간 댐 건설이 없었다하니 새삼 놀랍다.

 태풍 "루사"로 인해 온 나라가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천재지변의 곤고(困苦)한 와중에도, 과연 우리에게 지금 어떠한 일이 더 시급한지를 한 번 헤아려 생각해봄으로써 뒤에 가서 후회와 원망이 사무치는 일만은 더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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