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부스가 달걀을 깨트려서 세로로 세운 방법은 발상전환에서 나온 창의성의 본보기가 아닐까, 인류의 조상들이 높은 나무의 과일을 따려니 키는 작고 손이 닿지 않아 생각 끝에 막대기로 쳐서 과일을 땄던 것이 인류 최초의 창의적 발상이라 여겨진다. 생각의 전환은 획기적인 도구의 발달을 가져와 문명의 꽃을 피웠고 인간의 특출한 창의적 생각은 실마리가 풀려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필요는 수요를 부르고 궁리하면 해답은 나오기 마련이다. 연구를 거듭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특성이 창의성일 것이다. 그래서 남보다 앞서는, 남과는 다른, 남보다 뛰어난 생각이나 행동의 결실을 얻기 위해 온 세계가 발버둥치며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현장에도 창의성을 계발하는 교육을 해서 경쟁력 높은 인재를 양산해야 한다는 논란이 거센 바람이 되고 있다. 수많은 학원들, 특색 있는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광고들, 온통 창의성과 개성교육을 한다고 소란이지만 독창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얼마나 생겨나는지 알 수 없다.

 교과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 통제된 생활에서는 창의성이 나오지 않는다, 학교 공부만으로는 안 되고 다른 특별한 교육을 하라는 권유들, 온갖 의견들이 백가쟁명이다. 그러나 뚜렷한 해답은 보이지 않아 안개 속을 헤메는 기분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필자의 생각은, 첫째로 창의성의 토대가 되는 기초, 기본을 갖추는 데에 무엇보다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통제된 교과시간이든, 놀이를 하든, 책을 읽든, 피교육자의 자유스런 발상을 수용하고, 발상전환의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창의성 계발의 첫 단계가 아닌가 한다.

 지식의 인식과 기억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을 거치게 하는 교육을 상당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한가지의 정답 찾기에 충실하도록 하는 교육에서 창의적 생각을 활용한 여러 가지 해답의 가능성을 촉진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키는 대로만 행하는 교육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 과제의 해결방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과 많이 대화하고 질문과 생각을 교환해야 하며, 교사는 학생들에게 현상, 의문, 원인, 과정, 결과를 스스로 찾는 교육과정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창의적 사고를 높이기 위한 특별한 과목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과목이 다 포함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과 땅, 밤과 낮, 생물과 무생물, 모든 사상(事象)을 관심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여행과 모험을 겪으며 크고 작은 놀라움을 경험해야 한다. 운동이나 예능 활동에서, 마주치는 온갖 일상사에서 창의적 발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한 생각을 다른 생각에 접목시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현장 교사들의 각성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창의력 향상을 위한 교육은 충실한 기본 바탕의 교육위에 다양한 발상의 기회를 과감히 확대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학원 가기에, 대학입시에 바빠서 일부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미술전시회, 음악회, 시화전에 가서는 안되며, 각 종의 문화행사에 참여 할 수 없는 환경구조에서 특별히 창의력 계발을 위한 제도나 어떤 시스템의 조직적 노력만으로 창의성이 함양 될 것 같지 않다.

토론 문화도 발달시켜야한다. 의견개진의 기회를 많이 가지면 논리의 발달과 사고력, 표현력의 향상으로 끊임없는 생각 변화의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임기응변의 잔꾀든, 기발한 착상이든, 여러 상황정보를 종합하고 다시 단일화하는 통합과 분화, 개인사고와 집단사고 등의 발달을 꾀해야 한다. 깜짝 놀랄만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을 것인가? 학생들 개개인의 다양한 문화접촉과 발상전환의 기회를 과감히 확대하고 수용하는 교육활동이 창의성계발의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