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타향이 고향이 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도시이기도 하다.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울산으로 몰려들 때는 돈 벌면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했지만 정붙여 살다보니 눌러앉게 되고 10년, 20년 내 고향처럼 돼버린 사람들이 반 이상이다.

지방의 조그만 소도시에 불과했던 울산이 공업도시로 바뀌어 가면서 40여년 만에 인구가 10만명에서 110만명으로 늘어 급팽창하는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산업역군들의 힘찬 발걸음처럼 역동하는 도시, 날로 발전하는 도시, 경제부흥기를 맞아 술렁이는 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울산은 나날이 커가고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도시 뒷골목이 엉망이듯 발전 속에서 곪아가고 있는 환부도 있었다. 공장이 급격히 늘고 인구도 팽창을 거듭하면서 도시의 젖줄인 태화강은 중병에 걸렸다. 공장폐수, 생활오수가 마구 흘러들면서 강물은 1년 내내 거무죽죽했고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누구하나 들춰내기를 꺼려했다. 태화강변의 금모래 밭은 진흙구덩이가 되고 더 이상 아무도 멱 감으러 가지 않는 일명 '똥강'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 혐오스럽기만 하던 강에서 수영대회를 하고 연어가 되돌아 왔다. 전국태화강수영대회에서 파닥이며 물살을 가르는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은 믿기지 않는 모습에 감동했고, 어릴 적 태화강에서 멱 감던 추억을 가진 어르신들의 가슴은 흥분으로 뛰기 시작했다. 태화강변을 따라 이어진 십리 대숲 공원 아래 쪽빛 맑은 강물엔 물고기가 연방 튀어 오르고 강둑 꽃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는 사람, 둔치에서 축구, 야구, 테니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민, 울산시, 기업체가 5년여 만에 '공해도시 울산'의 상징이던 태화강을 전국 7대 도시의 도심하천 중 가장 깨끗한 하천(2004년 환경부 수질 비교 결과)으로 바꾸어놓은 결과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강을 살렸으니 이제는 들(野)도 살려야 할 때인 것이다. 예부터 태화들도 울산의 명소였으나 계속되는 침수와 무분별한 영농행위 등으로 피폐해지자 울산시민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잊혀져갔다. 이러한 태화들이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통과의례인 보상사업이 2001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워낙 면적이 넓고 지주들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보상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네 차례에 걸쳐 단계별로 보상을 했고 지장물(비닐하우스, 나무 등)에 대한 보상을 끝으로 올해 보상이 마무리됐다.

보상과정에서 오랫동안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지주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개인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대의를 위해 성실히 협의에 임해준 지주·영농인들의 양보와 시민들의 관심으로 태화들이 더욱 친근한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날만을 기다린다. 어렵고 힘든 보상과정을 되돌아보니 결국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순리대로 풀려나간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

물고기가 뛰어놀고 아이들이 물장구치는 모습과 대숲사이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키며 태화들을 누비는 상상을 하며 자식 같은 들과 강을 쳐다본다. 하루가 멀다하고 비닐하우스와 폐기물 사이를 등산화 신고 뛰어다니던 태화들 속에서 울산사람으로 거듭난 내 모습을 본다. 울산의 역사에 미력하게나마 힘을 보탠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태화강과 태화들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울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울산시민의 염원과 시의 의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울산 시민들에게 생활에 지치고 찌든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맑은 태화강을 바라보며 태화들을 걸어서 한 바퀴만 돌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몸으로 부딪혀봐야 사랑도 생기는 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으로서의 간절한 권유다.

서인수 울산시 건설행정담당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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