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를 원리로 하는 경쟁사회에서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생겨나기 마련이며, 자본주의란 패자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견제하고 조정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협력원리를 사회 안에 심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고였다. 이러한 생각은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여론을 선도하는 엘리트 또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논의가, 자신만이 승자가 되어야 하고 결코 패자가 될 것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지, 후자의 관점이 들어있는 진지함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인류사회 초기에 존재한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사회관계는 공동체적 관계로 시작되었다. 즉 협력원리(애정과 자기희생)를 본질로 한,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갈등과 미움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인간관계가 성립하기도 하지만, 인류는 혹독한 자연환경에 때로는 적응하고 때로는 투쟁하면서 성장하여 온 것이었다.
다수의 원시적 공동체가 접촉을 하면서부터, 인류는 공동체적 관계와 더불어 권위주의적 그리고 시장 경제적 관계라는 세 가지 형태의 사회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공동체사이의 접촉으로 인해 분쟁이 일어났을 때, 승자가 패자를 무력으로 지배하는 권위주의적 지배종속관계가 생겨났으며, 그 접촉이 평화적인 교역을 동반한 경우에 마침내 시장을 형성하였고, 거래주체 상호간에 대등한 합의에 의한 시장 경제적 관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고대사회나 봉건사회 등의 근대이전의 사회는, 대부분 공동체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적 지배종속관계를 주축(主軸)으로, 시장 경제적 관계를 부축(副軸)한 사회구성체였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근대자본주의사회에 이르러 시장 경제적 관계가 유통뿐만이 아니라 생산을 장악하자 마침내는 사회의 모든 면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공동체적 관계는 시장경제에 의해 분해되어 시민사회가 성립되었고, 전자의 영역은 어느 시기까지의 농촌과 혈연의 범위로 극소화(極小化)되었다. 권위주의적 관계를 지탱하던 지배계급의 무장(武裝)은 해제되어, 시민사회 바깥에 형성된 근대국가에 집중되면서 시민사회에 의해 통제될 대상이 되어버렸다.
근대국가가 군대와 경찰이라는 무력장치를 독점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집단 내부에서의 무장에 의한 지배계급을 배제시킨 것은, 여전히 국가간 민족간의 전쟁이 끝이지 않고, 미국과 같은 총기사회가 존재한다는 한계를 표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진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공동체를 완전해체 시키려고 하는 것-그 극단적 징조가 가족의 붕괴이다-은 경쟁원리가 협력원리를 짓눌러 부수려 하는 것이기에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시장 경제적 관계란 경쟁원리가 지배하는 사회관계임과 동시에 그 법적 표현인 계약관계가 시사(示唆)하는 것처럼 대등한 인간사이의 합의에 기초하여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사회관계이다. 근대자본주의사회에서의 합리성 역시, 무력에 의한 신분적 지배를 끝나게 했다는 점에서는 역사의 진보라 할 수 있고, 또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과거에는 일부 남성계층에게만 해당되었던 시민의 범위가, 남녀평등과 함께 대중화된 것도 진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대중시민사회 속에 어떻게 하면 협력원리를 뿌리내리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빠른 시일 안에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김대환 경주대학교 방송언론광고학부 교수 본보 독자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