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송리(盤松里)는 태화강 물줄기가 언양읍내를 지나 울산으로 흘러드는 길목에서 다시한번 반송들판을 적시며 잠시 마무는 곳이다. 반송들을 앞 마당으로 산을 등지고 자리잡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고속도로와 국도에 의해 들판과 마을이 갈라져 있다.

 농삿일을 주업으로 하는 마을주민들이 도로를 건너고 고속도로 아래로 난 자그마한 박스(통로)를 통해 들판으로 나다니다보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국도는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고 황색 중앙선으로 그어 놓아 들판으로 나갔다 귀가할 경우 어쩔수 없이 중앙선을 침범할 수 밖에 없다.

 반송중리 박성갑씨는 "주민들의 편의가 먼저인지 통행 차량의 편의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경운기로 들판에 갔다올 경우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해 놓았다"며 "사고라도 날까봐 늘 마음을 조이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국도를 끼고 있는 반송리 전체를 통틀어 점멸신호등을 제외하면 교통신호등이 설치된 곳은 단 한곳도 없다. 2㎞ 가까운 도로변에 겨우 3곳만 중앙선을 넘어갈 수 있도록 비보호 좌·우회전 구간을 설치해 놓아 주민들의 불만을 싸고 있다.

 또 엄청난 속도로 국도를 달리는 차량으로 인해 인명사고 잦아 늘 불안하다. 박곡수 반송상리 청년회장은 "최근 10년동안 마을 주민 세사람을 포함해 열명이 사상을 당했다"며 "과속단속카메라를 달아 주겠다고 해 놓고는 감감 무속식"이라고 토로했다.

 반송리는 상, 중, 하리 3개 행정리로 나눠진다. 언양 어음리와 고속도로로 경계를 이루는 곳이 반송상리, 중앙주유소부터 언양~울산 고속도로 울산톨게이트와 대방아파트까지가 반송중리이다. 반송하리는 (주)효성 언양공장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상·하리로 2개 행정리로 돼 있던 것이 지난 95년 200가구의 대방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하리에서 중리가 분리돼 3개 행정마을로 변했다.

 반송상리는 장씨 집성촌이라는데서 유래된 장촌마을로 불리고 있지만 이제는 세월에 희석돼 60가구중 20가구 남짓한 장씨들만 살고 있다. 언양~울산간 고속도로와 국도를 따라 좌우편으로 길다랗게 나열해 있듯이 형성된 장촌마을 주민들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는 차량 소음으로 365일 "소음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고속도로가 마을보다 높은 곳에 있어 다른 어느 곳보다 소음이 심하다. 그래서 가능한 담을 높게 쌓고 창문도 모두 이중창으로 두껍게 설치하는 것이 "기본"이다.

 엄규섭 반송상리 이장은 "마을주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좀 조용한데서 살아 보는 것"이라며 "늘상 소음에 노출돼 있어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부분적인 노이로제 증상을 겪고 있으며 명절이나 휴가 때 자녀들이 고향을 찾아와도 소음으로 잠을 설쳐 머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고속도로 방음벽을 요구하고 있다. 세우더라도 시야가 확보되는 투명 방음벽을 바라고 있다.

 지난 2000년 3월 든든한 뒷배경으로 수십년째 마을을 지탱해주고 있던 뒷산에 산불이 발생해 나흘동안 20ha가 넘게 불에 타는 재앙을 입기도 했다.

 반송중리도 공씨들이 터를 먼저 잡았다는데서 공촌으로 불리고 있으나 현재 공씨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송상리와 교통편이나 소음문제가 별반 다르지 않다. 고속도로에 방음벽이 세워져 있을뿐 들판으로 드나들기 불편한 점은 매 한가지다. 게다가 점멸등 조차 없는 교통사고 사각지대에 마을이 잇닿아 있어 오는 2004년 개통 예정인 울산~상북간 4차선 확장도로를 손꼽아 기다린다.

 도로변이라는 불편한 점을 마냥 불평만 하지 않는다. 이말분씨는 "세상 모든 일이 양면성이 있는데 한가지가 나쁘면 반드시 다른 한가지는 좋은 점이 있게 마련"이라며 "다소 시끄럽고 사고 위험이 따르기는 해도 그 대신 교통이 무지 편리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반송하리는 국도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뒷편에 있으면서 반송들을 굽어보고 있다. (주)효성 언양공장과 인근 상가까지 포함하고 있다.

 (주)효성이 동양나일론으로 불리던 시절만 해도 셋방을 얻어 직장에 다니고 마을 주민들도 생산직으로 많이 다녀 마을 규모가 지금보다 번성했지만 (주)효성이 자동화와 생산품목의 변화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지금은 셋방을 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은숙씨는 "20년 전만해도 빈촌에 속했으나 주민들의 부지런한 정서에다 부녀자들도 너나없이 일거리를 찾아 나서 지금은 어느 마을 못지않게 잘 사는 마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요즘도 일용공으로 (주)효성공장에 품을 파는 부녀자들이 꽤 있다. 회사 사정에 따라 부녀회를 통해 마을 주민 인부를 요청하면 60살이 넘어도 주저하지 않는다. 여느 농촌에서 볼 수 없는 현금수입 솔솔하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대부분 농삿일과 회사사정 등을 잘 고려해 조절하는 솜씨가 이제는 보통이 다 넘는 억척이들이다. 그만큼 마을 전체 분위기가 부지런함으로 가득차 있다.

 서은숙씨는 "부지런함이 마을 단합으로 이어져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서로를 위하는 인정이 남다르다"며 "남편 직장을 따라 이곳에 왔다가 마을 인심에 빠져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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