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십 년 동안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던 우리나라의 은행산업은 최근 들어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에 시행되었던 금융구조조정이 대형화와 겸업화의 길을 열었다면,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금융시스템의 전환은 우리경제를 금융투자 중심의 자산운용형 경제로 바꾸어 나간다는 목표 하에 자본시장이 자금흐름의 중추적인 기능을 맡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구체적으로 자본시장통합법, 동북아 금융허브 등의 정부 정책과 이에 따른 금융수요 및 공급사이드의 변화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자본시장통합법은 은행과 보험을 제외한 나머지 자본시장 관련 금융업무를 하나로 묶어 포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는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함과 동시에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육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은 우리나라를 자산운용업에 특화된 동북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로 발전시켜 국민소득 3만불 시대로 나아간다는 우리경제의 새로운 성장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과 동북아 금융허브의 구축을 통해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이 겪게 될 구조적 변화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예금에서 투자상품으로의 전환'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예금과 대출업무를 핵심적인 영업기반으로 삼고 있는 은행업 입장에서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도전이며, 향후에도 은행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신성장동력의 발굴 등을 포함한 새로운 영업전략 수립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둘째, 앞에서 언급한 정책 변화를 통해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현실적으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피부로 실감하고 있는 바이지만, 요즘 들어 가계와 기업의 여유자금 운용수단으로 펀드 등 투자상품에 대한 거부감이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최근 언론에서 자주 보도되고 있는 증권사 CMA 문제는, 정부정책 기조의 전환에 따른 금융서비스 수요의 변화속도가 생각 보다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량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도 은행대출 보다는 기업내부자금을 이용하거나 자본시장의 회사채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현상으로 보인다.

이상을 종합하면, 은행업은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달라짐에 따라 자금의 조달과 운용 양 방향에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으며, 현재의 시스템을 근원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금융서비스 공급의 측면에서도 은행·증권·보험을 아우르는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함에 따라 금융권 전체가 빅뱅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의 금융빅뱅을 통해서는 대형화와 종합금융그룹화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기관간의 합종연횡이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러한 흐름은 특히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 양 측면에서 상대적인 열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금융기관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에서 언급한 금융시스템의 전환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금융산업을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천으로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속성상 금융중심지인 수도권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커질 것도 명백하기 때문에, 지역 중소기업과 지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금융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배려가 보완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정책자금과 정부운용기금의 일정 비율을 지방은행을 통해 지역중소기업에 지원하도록 함으로써 지역금융기관의 자금동원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 중소기업의 구조고도화를 위해서는 지방은행에 벤처 보육에서부터 기업공개까지 포괄하는 투자은행업무를 허용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이장호 부산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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