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이란 단어를 보면, 우리 울산 사람들은 먼저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낸 고헌 박상진 의사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광복절이 지난 지 한 달도 넘었는데 왜 뜬금없이 '광복'을 찾느냐고 의아해 할 것이다. 대부분 독자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고 지나칠 것이지만, 어제(9월17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이 창설된 지 6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勒結)되어 주권을 빼앗긴 우리나라는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였고,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자 1919년에는 온 겨레가 3·1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독립을 향한 염원은 전국 방방곡곡과 해외까지 퍼져나갔다. 그 결과 같은 해 4월에는 중국 상해 프랑스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1919년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를 제정하였는데, 이는 군대를 창설한다는 원칙 하에 군대의 편제와 법규를 마련한 것이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광복군 창설계획을 세웠으나 일본군 점령지역이 확대되면서 유랑의 길을 계속하여야 했으며, 최종적으로 정착한 곳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전시(임시) 수도였던 사천성(四川省) 중경(重慶)이었다.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바로 이 중경에서 창설되었다. 이날의 행사는 양자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가릉강의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새벽 6시에 거행되었다. 그 공식 명칭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韓國光復軍總司令部 成立典禮)였다. 공습이 없는 날을 택한 이 날의 날씨는 쾌청하였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비롯한 내외 귀빈 200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성립전례를 갖기 이틀 전에 김구(金九) 주석은 미리 광복군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에서 "광복군은 1919년의 임시정부 군사조직법에 의거하여 중국총통 장개석의 특별허락을 받아 조직되었으며, 중화민국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연합국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고 그 목적을 천명하였다.

광복군의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42년 4월 20일 조선의용대의 편입이었다. 또한 광복군의 군사공작 가운데 특기할 사항은 주인면공작대(駐印緬工作隊 인도·버마 파견 공작대)요, 다른 하나는 국내정진(挺進)작전이다. 이 작전은 곤명(昆明) 주재 미군특수부대(O.S.S)에서 광복군에 대한 특수공작훈련을 실시하여 한국 내의 요지에 투입, 적후공작을 전개한다는 계획으로서 D-day는 1945년 8월 20일이었는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다.

광복 후 미군정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아 임시정부 요인들은 개인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광복군도 역시 무장해제한 상태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 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3·1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서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해서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라고 하여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을 천명하였다. 광복군 창설과정을 간략히 보았는데, 광복군 창설의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립보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광복군의 창설은 우리나라의 군맥(軍脈)이 일제 침략에 의해 단절되지 않았다는 민족사관을 천명한 것이다. 군맥의 단절은 국맥(國脈)의 단절이며, 나아가 민족사의 맥이 끊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임시정부는 국제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광복군을 창설하고 이어 대일선전 포고(1941년 12월10일)를 하자, 연합국은 광복군을 참전시켜 활용하였고, 임정의 국군으로서 그 실체를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이 것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국군의 정통성과도 관련된 문제이며, 일부에서 9월17일을 '국군의 날'로 하여야 한다는 논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광복군 출신들이 귀국 후 우리 국군에 입대하여 지휘관으로서 국방의 초석을 다지는데 많은 기여했다는 점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년 9월17일 광복군 창설 기념행사를 거행하여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김선기 울산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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