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대말 만하여도 울산은 5만 내외의 조그마한 읍이었는데 지금 100만이 넘는 도시로 발전한 것을 보면 울산의 변화랄까 그 위상이 대단히 우뚝하다. 이런 울산은 동해 안을 끼고 있는 도시로 크고 작은 민담 설화 전설이 풍성한 지역이다. 연오랑 세오녀의 아름다운 얘기도 있고, 치술령과 박제상의 얘기도 발원지는 울산 문화권이다. 반구대의 암각화도 있고 삼국통일의 뒷받침이 된 달천 탄광의 쇠부리도 있는 곳이다. 대왕암과 감은사지도 같은 문화권이다. 지도를 보면, 장백대간의 힘이 뭉쳐 무룡에 머무르더니 문수봉으로 우뚝 선 곳이 울산이다. 이런 고장에 아름다운 처용 설화가 세죽리 앞바다의 처용암과 함께 전해 오는 것은 하늘이 준 축복이다. 하기는 강릉에도 단오제가 있고 진주에도 개천제가 있다. 또 남원에는 춘향제가 80회의 축제를 맞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밖의 지역에 이런 이름난 설화를 주제로 한 축제가 있는가. 울산과 가까운 부산도, 충청의 중심부 대전도, 대구도, 이런 설화는 없는 듯하다. 그래서인가 이런 지역은 좋은 전통 문화 축제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광역시이면서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울산으로서 이만한 문화 축제를 해마다 치르는 것은 울산의 큰 자랑거리다. 만일 이런 지역에 고도의 상징과 은유로 점철된 처용 설화가 없었다면 얼마나 정신적 공허감을 느끼겠는가. 더구나 이 이야기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이 지역에서 자라나는 2세들에게 무한한 자부심을 심어주고 아름다운 상상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설화가 도덕적인 흠결이 있거나 비윤리적이라면 감히 교과서에 싣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이 처용문화제의 이름을 두고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처용의 정체성이 뭐냐, 처용이 아내의 불륜을 수수방관한 비겁자가 아니냐, 또는 경주 문화권의 하위 지역민이 아니냐는 등의 얘기들을 책임 없이 내뱉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삼국유사 원문이라도 한번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인가 묻고 싶다. 처용랑 망해사 부분만이 아니라 삼국유사 전편을 원전으로 읽을 줄 알아야 설화를 이해할 수 있고 설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처용을 말할 수 있다. 단편적인 처용이야기를, 그것도 한글로 된 번역문을 읽고 엉뚱한 논리를 남발하는 것은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만일 제대로 공부하는 학자라면 선학들이 제기한 학설들을 면밀히 읽고 학술적 논문을 전국적인 학회지에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학자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몇 사람이 모인 시민 앞에서 전공도 아닌 사람이 비본질적인 주장을 하여 선량한 민중을 오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처용을, 듣기에도 생소한 '색공' '마복자'류로 폄하한다면 남원의 춘향제의 춘향은 어떤 인물인가. 결혼도 하기 전에 이도령과 내통한 처녀가 아닌가. 개천제에서 기리는 논개는 어떤 인물인가. 흥부 축제의 흥부는 과연 이 시대에 본받을 만한 인물인가.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얻어 맞고도 그 밥풀을 뜯어 먹는 나약한 인물 아닌가. 그래도 해당 지역에서 축제의 이름을 바꾸자는 운동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바꾸기는 고사하고 각 지역마다 더욱 축제 문화 개발에 힘쓰고 있다. 도자기 축제, 해운대 모래축제, 반딧불 축제, 나비 축제, 인삼 축제, 빙어 축제, 송이 축제, 전어 축제 등등 다양한 축제들이 날로 생겨나고 있다.

필자는 처용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울산의 처용문화제는 지속되어야 하고 더욱 빛나는 축제로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용의 수정이나 보완은 별개 문제다. 처용문화 축제는 전승되는 고유한 전통적 문화 유산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고 지방 분권의 변별성을 보여 주는 정신적 지주다.

김경수 중앙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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