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에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우리에게 낯익은 말이었다. 또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하면 훈련을 면제해 주고 빵과 우유까지 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불과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시골 마을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고, 농어촌 초등학교 중에는 입학생이 없어 폐교한 곳도 많다. 이에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범정부적 '새로마지 플랜2010'이란 출산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1960~70년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시작된 출산억제정책은 결국 성공을 거두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002년 OECD국가 중 최저라는 기록 달성에 이어, 2006년 합계출산율 1.13명으로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고만 것이다.

합계출산율이란 출산 가능한 여성의 나이인 15세부터 49세까지를 기준으로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자녀의 수를 나타낸 것으로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960년 6.0명에서 1983년에 인구대체 수준 즉 현재 인구수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 2.1명으로 감소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낮아져, 90년대 후반 처음으로 1.5명 미만으로 감소하였으며 2001년부터는 1.3명 이하로 감소, 초저출산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출생아수로 보면 1960년에는 104만명이었으나 2005년에는 43만명으로 반이하로 감소하였다. 울산의 2006년도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전국 평균인 1.13명보다 약간 높으나 1997년도와 비교하여 0.56명이 감소하여 전국 평균 감소 0.41명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전국 16개 시도 중에서 가장 높은 감소율을 보이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이렇게 급속히 출산율이 떨어진 것은 경제성장 과도기에 발생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큰 작용을 했다는 분석이다.

IMF를 겪으면서 심리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자리를 잡았으며, 자녀양육 및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과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등의 원인이 주요역할을 했다. 이밖에도 혼인과 자녀에 대한 인식 변화, 전통적인 남녀 성역할의 퇴색 등 삶의 가치관 변화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의 심각성을 인지 못한 정부의 책임 또한 크다. 1962년 가족계획사업이 시작된 뒤 1983년에 인구대체 수준인 2.1명 이하로 감소하였지만, 정부는 1996년까지 출산억제정책을 유지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자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저출산 현상을 단순히 가족구성원의 수가 줄어든 것으로 해석하기에 앞서 국가적 위기로 인식해야 되는 것이, 저출산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향후 경제성장 둔화와 노인복지정책 저하 등 보다 큰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2년에서야 대책 마련에 들어가 2006년 '새로마지 플랜2010'이란 정책을 내놓고, 출산, 보육, 교육, 세제혜택 등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국민의 반응은 아직도 냉소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좀더 현실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우리국민 또한 뒷짐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저출산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함께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결국에는 그 피해가 우리들에게 되돌아 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출산율을 인구대체율 수준인 2.1명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새로마지 플랜2010'정책이 자리를 잡고, 우리 국민이 함께 노력한다면 OECD회원국가의 평균 합계출산율인 1.6명까지는 회복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함께 나오고 있다.

과거 출산억제정책이 실효를 거두었듯이 이제 우리국민이 나서서 가족가치관과 양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가족 2자녀이상 낳기 운동에 함께 동참하여 저출산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다시 한번 우리 국민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상규 울산대학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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