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인 제네바핵합의가 폐기될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핵합의의 파기를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결국 이 합의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그동안 일반적인 관측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북한 문제 처리를 잠시 유보하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북한 다루기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심각한 질문들에 직면하게 됐다. 만약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경수로 건설과 중유 공급을 중단하는 한편 다른 나라들에도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도록 요구할 경우, 또 북한이 이에 강력히 반발해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설 경우, 결국 미국과 북한은 벼랑끝의 대결을 벌일 것으로 우려된다.

 시급한 것은 북한이 먼저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일이다. 북한으로서는 그들의 생존 보장과 핵을 맞교환하는 이른바 빅딜을 희망하고 있을 것이지만 이제 미국이 전혀 흥정에 응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으며 북한의 협상 의지 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또 앞으로 있을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제재에 맞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경우 어떤 결과를 각오해야 할지 심각하게 계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먼저 핵계획을 즉시 폐기, 핵무장 불량국가라고 하는 딱지를 모면함으로써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피하고 최근 어렵게 시작된 외부 세계와의 화해과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것 뿐일지 모른다.

 제네바합의가 파기될 경우 북~미간의 극한 대결은 필연적으로 남북, 북~일 대화의 추진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겨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 수립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도록 손을 묶고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 정부는 제네바합의 파기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이 평화체제의 유지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단지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 아니라 정확한 상황파악에 따른 예상이기를 바란다. 제네바 체제가 존속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