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쯤 되면 언제나 어른들의 생각보다 세상의 소문들을 많이 알고 있다. 부끄러운 노벨상 논란, 남북정상회담의 뒷거래 운운,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출마자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음모와 배신의 얘기들, 국정감사의 질의 응답하는 광경들을 아이들은 웃으며 혹은 입을 삐죽대기도 한다.

 신성하다는 의사당에서 시정잡배들이나 씀직한 용어로 서로 헐뜯고 있는 모습은 월드컵 아시안게임에서 보았던 페어플레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의아한 눈초리다. 교사들은 무엇하나 아이들에게 떳떳이 설명하기는 커녕 부끄러워 화제를 피해야 할 형편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은, 2세 국민 교육이다. 학부모, 학교가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지만, 2세 교육을 위한 또 하나의 중대한 책임의 축은 현재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바로 다수 대중의 투표로 선출직, 고위직에 나아간 사람들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공동사회의 일원이 되는 기초를 배운다고 하지만 중요한 사회 상식과 시민의식은 사회지도층에게서 배우는 바가 많다. 매체들로부터, 여론을 통해서, 또래들과의 의견교환에서 배우고 행동하며 도덕성, 책임감, 국가관, 등의 의식세계를 형성하고 행동 양식을 굳혀 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지도층의 언행은 그 자체가 사회 교육의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도대체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라고 그렇게 난처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그들의 진면목이 아닐진대, 참으로 당혹스럽다. 될수 있는 한 과격한 직설법은 좀 피하고, 풍자적인 언어로, 정문일침의 은유로, 멋진 유머로 대체하여 정곡을 찔러 말 할 수는 없는지, 표를 모아 보내준 그 높은(?) 직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렇게 까지 하수로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신념과 애국심, 봉사심, 국가관, 공익을 위한 노력, 국민의 대표로서의 의무, 무엇하나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다. 지도층의 모범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회 현상 그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며, 아이들의 상식이 되고 그 모습 그대로 2세 국민들의 머리 속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논리를 갖추게 할 의도로, 상식을 넓히고 폭넓은 식견을 갖게 할 목적으로 신문을 보라고 권하다가 정치 사회 쪽의 질문이라도 받게 되면 대답에 너무나 궁색해 진다. 지도층의 모범은 아이들의 기본적 도덕율이 되며 윤리의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사회교육의 책임이 어디 학교와 가정에 한정되어 있는가, 사회교육의 크나 큰 교실에서 아이들이 올바로 배우고 알도록 지도층은 최소한의 모범을 보여 줘야 할 책임이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 줘야 할 텐데 서로 욕을 해대며 싸우고 있으면 누가 옳은지 알 수가 없다. 옳고 그른지를 알 수 없으니 보다 더 나은 쪽의 선택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백성들은 당혹스럽고, 미래가 불투명하니 불안감만 쌓여간다. 하물며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정책을 놓고 멋진 논리의 대결, 정연한 토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장래에 멋진 정치가가 돼 보겠다는 꿈을 가지는 어린이도 나올 것이다. 명쾌한 토론으로 국민들의 삶을 걱정하며 멋진 미래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어느 누가 의원들의 세비가 많이 나간다고 비꼴 것인가,

 방청석에 앉은 어린 학생들의 눈과 귀를 의식해야 한다. 신문을 보고 묻는 학생들에게 교사들이 설명하는 데에 난처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인, 정치 판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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