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천리는 전형적인 농촌과 새로 조성된 아파트촌이 상반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나름대로 옛 정서를 이어가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효성 언양공장아래 구수리로 접어드는 도로를 경계로 천소리와 반천초등학교에서 반천교까지 이르는 미연1리, 그리고 반천현대아파트의 미연2, 3리 4개리로 나누어져 있지만 사는 모양새는 천소리와 미연1리가 옛그대로의 농촌이고 미연3, 4리는 아파트단지다.

 반천리는 언양읍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리적으로 울산과 가까워 이중적인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같은 생활형태로 인해 반천초등학교는 근래들어 저학년 학생들이 3~4학급씩 운영되지만 졸업하는 학생은 20여명 밖에 되지않는 기현상을 보인다. 중학교 학군 때문에 5학년 때부터 늦어도 6학년 초만되면 대부분 울산시 중·남구로 위장전입으로 전학하기 때문이다.

 한성선씨는 "반천에서 언양중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든지 2㎞ 가까이 걸어야 하는 불편이 있는데다 시골학교라는 인식 때문에 주소를 울산으로 옮기고 거주는 반천리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교육적인 환경은 개선해 주지 않으면서 자녀들을 위한 위장전입만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천리의 뿌리인 천소리와 미연1리는 이웃간의 정다움이 남아 있는 농촌이다. 이질적인 문화나 시설이 들어오더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토착민들의 정서다. 겉모습은 점차 도시적인 성향으로 변해가지만 수십년을 함께 해오면서 형성된 주민들의 끈끈한 정은 세월에 좀처럼 희석되지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이 찾아드는 무차별적인 난개발의 바람을 "이웃사촌"의 정서만으로 밀쳐니가 버겁다. 반천리 주민들은 이질적인 문화의 침투를 본능적으로 경계하면서 모텔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해 공사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고원영 미연1리 이장은 "군부대가 마을 안에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민원들만도 만만찮은데다 이제는 모텔까지 들어서려고 한다"며 "주민들이 모텔 건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이질적인 문화의 침투가 가져온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소리와 미연1리 주민들에게 짭짤한 부수입을 안겨줬던 대밭이 아직도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천대받기 전만해도 이곳주민들의 유일한 부수입이었다. 가느다란 줄기의 분죽으로 10여년 전만해도 죽세공 원료로서 인기가 높아 집집마다 대나무밭이 무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수요가 없어지면서 이제는 골칫거리로 변했다. 밭으로 활용하려해도 중장비를 동원하지 않고는 대나무 뿌리를 어쩌지 못해 방치해 두고 있다.

 천소리는 울산~언양간 국도를 따라 식당 등이 들어서 있고 마을 주택들도 대부분 개조를 마쳐 외형적으로는 도시풍을 띠고 있지만 속 내막은 아직 농촌 그대로다.

 최학선 천소마을 이장은 "마을 주민 대다수가 노인들이어서 농사짓는데 노동력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누구네 자식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누가 어떻게 아파 병원에 갔다왔는지를 훤히 알 정도로 한가족처럼 살아가고 있다"며 "흙만 파고 살아온 사람들이 돼 나서 남들과 다투고 이권을 따지기도 잘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7가구의 논 일부분이 울산~상북간 국도 확장공사에 파묻혔다. 여느 곳 같으면 조금이라도 더 보상을 타 내려고 싸우기도 할 일이지만 7가구 모두 고스란히 책정해준 보상금 외는 바라지도 않았다.

 최이장은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 어쩔 수야 없지만 평생 지켜온 땅이 도로로 변하는 모습이 몹시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민원으로 언론에 오르내려 "이름" 난 미연1리는 오붓한 마을을 이루는 천소리와는 달리 주택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면서 경부 고속도로를 경계로 한 고모재 골짜기까지를 포함하고 있어 면적이 꽤 넓다. 여느 법정리만한 넓이다.

 면적만큼이나 민원도 많다. 그중에서 주민들과 가장 불화가 심한 곳은 연중 예비군 훈련을 맡고 있는 중구지역 예비군들의 훈련장인 고모재의 육군 제7765부대.

 주민들은 농사철과 무관하게 들이닥치는 예비군차량으로 농로가 막히기가 일쑤고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생활오수도 적지 않으면서 부대위에 있는 농지에 출입하려면 꼭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서 길을 가로 막는다고 하소연한다. 또 중구 예비군훈련장이라서 대민지원도 시원찮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경목 할아버지는 "예비군차량이 밀려 들어오면 교행이 제대로 안돼 1㎞ 가량 밀리고 농사짓는 사람이 무슨 신분증을 갖고 다니느냐"며 "마을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면 최소한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큰 하천으로 흘러드는 마을입구의 소하천을 직경이 1m도 채 안되는 관로를 묻고 도로를 개설하는 바람에 비만 오면 물이 하천으로 유입되지 못하고 도로와 논으로 넘치는 물난리도 몇년째 겪고 있다.

 고모재 마을은 끊어질 듯 이어져 있는 십리 골짜기를 따라 형성돼 있다. 마을 최상단부에는 군부대가 그 위쪽에는 미연1리 주민민들의 식수원이 있다. 중간지점에 중소기업이 4곳과 장애인 시설인 혜진원이 운영되고 있다.

 미연2, 3리는 반천현대아파트를 101~103동과 104~106동으로 갈라놓았을 뿐 한 마을이다. 30~40대의 젊은층이 주류를 이루며 70% 가까이가 울산을 생활권으로 한다.

 반천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성선씨는 "반천현대아파트 주민들은 주소가 반천리라는 것 뿐이지 천소리와 미연1리 주민들과는 거의 교류도 없는 이방인들"이라고 말했다.

 25~32평형까지 다양한 평수가 있으면서 울산에 비해 전세값도 싼데다 강과 들판, 산에 인접한 전원적 풍경을 동경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 편의시설마저 아파트상가에 밀집해 있어 모든 생활이 아파트내에서 이뤄져 "별세계"를 이루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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