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자동차 왕국의 번영과 몰락

100여년간 세계 호령 '자동차왕국' 디트로이트
강성노조 휘둘려 경쟁력 저하 '도시몰락' 비운
"울산도 타산지석 삼지않으면 미래없어"

도심 곳곳에 버려진 고층 빌딩, 도로변에 무질서하게 방치된 폐가와 낡은 건축물, 공원 쓰레기통을 뒤지는 부랑자와 한낮 텅빈 대로를 가로지르는 흑인들….

세계 '자동차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의 외곽 풍경은 그야말로 폭격맞은 도시를 연상할 만큼 을씨년스러웠다. 지난 100년간 세계를 호령한 '자동차 왕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신화를 낳은 디어본의 포드 와아오밍(Ford Wyoming)에서 디트로이트 시가지로 향하는 대로변 거리는 100년 영화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비극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

좌우 도로변 풍경은 미국 10대 도시라 하기에는 너무나 썰렁하다. 버려진 빈집에는 알아보기 어려운 낚서들로 가득했다. 허름한 상점들도 거의 문을 닫았다. 많은 건물에 'Sale'이란 안내판이 내걸렸다. 상당수는 오랫동안 건물이 팔려나가지 않으면서 시간 속에서 그 색이 바랬다.

도심지 외곽 5㎞지점에 대규모 광장을 거느린 미시건 중앙역은 이 도시에서도 몇 번째로 큰 건물이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흉물이 돼버렸다. 흑인과 중남미 계통의 빈민들로 북적이는 슬럼가 한복판에 건물의 입지를 선택한 죄(?)로 불가피하게 주인이 건물을 버린 채 떠난 케이스다.

건물 앞 잔디 광장에서 부랑자들이 쓰레기통을 열심히 뒤지고 있다. 건물 취재를 위해 차에서 내렸다가 서성거리는 부랑자들의 위협에 못이겨 부리나케 도망치고 말았다. 이것이 몰락한 디트로이트의 현실이다. 디트로이트 중심가 반경 10㎞ 내에서는 이 같은 풍경은 일상적이다.

고층 빌딩들이 빼곡한 도심지 중심을 활보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보이는 사람은 백인과 중남미 계통 주민들 뿐. 중심가는 수많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이 도시는 낮에는 백인 화이트 칼라 계층이, 밤이면 흑인들의 왕국으로 변하는 '두 얼굴의 도시'로 전락했다. 이 도시의 전체 구성원 중 82%가 흑인이다.

캐나다 윈저시가 내려다보이는 디트로이트 강변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GM 본사에 근무하는 근로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경제력을 가진 이들은 밤이면 도심외곽으로 물밀듯이 빠져나간다.

이 도시 구성원 중 12%에 불과한 백인들은 외곽 30여분 거리의 오클랜드, 웨인, 메콤 등 일명 트라이카운티로 대부분 탈출했다. 1967년 '12번가의 폭동(The 12th Street Riot)'이라는 백인 경찰과 흑인간 충돌 이후 백인들의 도시탈출은 더욱 가속화됐다.

미 전역에 50만명의 조합원을 거드리며 오늘날 디트로이트의 몰락에 기여(?)한 제퍼슨가 8000번지에 자리잡은 전미자동차노조(UAW) 본부도 주변지역 몰락을 막지는 못했다. UAW는 은퇴한 근로자들의 의료보험료까지도 자동차 회사 측이 부담하도록 해 오늘날 디트로이트 몰락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디트로이트시는 1950년대 한 때 185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지금은 90만명 수준으로 쪼그라 들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로 대변되는 빅3가 일본·유럽·한국차 공세에 밀리면서 자동차 공장의 대량해고가 이어져 근로자 및 가족들이 도시를 버린 결과다.

포드에서 28년간 근무하다 2년 전 퇴직한 이종효 디트로이트 한인회장은 "기업들의 정리해고가 많아지다 보니 유입 인구보다 유출인구가 많아지게 되면서 집을 아무리 싸게 내놔도 팔리지 않게 됐다"면서 "현재 디트로이트에만 5만개의 주택 매물로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폭동의 도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다 이주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인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드는 이 도시로의 전입을 희망하는 주민이 있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탈출하려면 주택은 버리고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디트로이트에선 차 보다 집값이 더 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쇠퇴와 그 괘적을 같이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차들의 거세 도전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한데다 강성 노조에 휘둘려 은퇴자 연금 부담까지 지면서 노사 공멸의 비운을 맞게 됐다. 수입차에 밀려 빅3의 시장 점유율이 낮아지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대량 해고로 이어지고, 일자리를 찾지못한 주민들이 떠나면서 도시는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미시건대 기계공학과 정도회(42) 연구교수는 "디트로이트가 망한 것은 자기들이 소비자들을 너무 잘 안다는 착각에 빠져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세계 최고라는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에 젖어 일본·한국·유럽의 공세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포드는 방만한 사업확장에도 불구, 소비자의 요구에 5년 이상 대응하지 못했고, GM은 경영진 의사결정이 너무 느렸으며, 크라이슬러는 기술력 부족 문제를 드러내 이제 빅3라는 단어를 못쓸 지경까지 왔다"면서 "노사분규가 극심한 울산도 이들 회사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역으로 삼지 않으면 결코 미래를 낙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국 디트로이트
글=김창식 기자·사진=김경우 기자
취재자문=정도회 미시건대 연구교수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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