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2일 정기국회가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정치권은 병풍문제, 총리서리 청문회 문제, 노벨평화상 로비설, 4천억원 북한 지원설 등 일련의 정치적 공방으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기국회의 대정부 질문을 지켜보면 대부분의 의원들이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과 관련한 질문보다는 상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흠집내기 위한 의혹제기와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더욱이 대정부 질문에 부여된 규정시간을 위와 같은 발언으로 다 채우고도 모자라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도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은지 정확한 근거나 물증제시 없이 시중에 떠돌고 있는 각종 유언비어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악용하여 목청높이 떠들고 시정잡배보다 못한 원색적인 욕을 서로에게 퍼부으며 귀중한 하루 하루를 소모적으로 보내고 있다. 그런데 더욱 웃기는 것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위와 같은 대정부 질문이나마 경청하고 있는 국회의원들도 몇 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쫓아다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회의원들의 안중에는 올해 12월에 다가올 대통령 선거외에는 아무 것도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의 지위는 단순히 어떤 일개 정당의 소속원으로서의 지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지역 선거민들을 대표할 권한을 위임받은 자일뿐만 아니라 국회를 구성하여 행정부나 사법부와 같이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하는 독자적인 헌법기관으로서의 지위도 겸유하는 입장에 있는 자이다. 그럼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은 선거기간동안은 갖은 아양으로 유권자를 유혹하다가도 당선만 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일개 정당의 행동대원으로 탈바꿈한다. 국민들을 의식한다면 전혀 할 수 없는 행위들을 거리낌없이 하면서도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정작 중요한 국회 본연의 기능인 민생법안 처리가 안중에 들어올 리가 없다. 즉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마땅한 정치권이 정권쟁탈이라는 당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본연의 직분인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 역할은 망각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00년 5월 개원한 국회가 제출한 의안은 2002년 8월30일 기준으로 모두 1천691건으로 이 가운데 34.7%인 588건의 법률안이 계류중이라고 하는데 이중에는 2년 가까이 방치된 법률만 해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국회 상임위원회별 미처리 법안 건수를 보면 행정자치위원회가 105건으로 가장 많고, 환경노동위원회 64건, 법제사법위원회 58건, 보건복지위원회 48건, 건설교통위원회 42건, 재정경제위원회 40건, 통일외교통상위원회 36건, 문화관광위원회 34건, 국방위원회 24건 등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고용보험법, 국세기본법, 민법 등의 민생관련 개정법률안 등은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법안으로서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법안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를 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어야 하는가도 중요한 문제이겠지만은 그것은 국회안에서 정치권이 비방과 폭로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결국 선거법이 정하는 틀 안에서 국민의 표로서 결정할 문제이다. 따라서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정쟁만 일삼다가 시간에 쫓겨 회기가 끝날 무렵 무더기로 법안을 처리하지 말고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정쟁에 쏟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쪼개서 법안 처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현안이 산적해 있고 그와 관련한 각종 민생법안이 계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기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일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진정한 본분을 망각하는 행위라고 본다. 뜨거운 열기를 조금이라도 식히고 냉철하게 현안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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