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 처방을 이야기하자. 국립의료원에서의 시범사업 실시를 앞두고 집단 휴진까지 강행한 의사회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고, 국민들의 불편이 이어지면서 성분명 처방은 일부 이해 당사자들에게만 '뜨거운 감자'이고, 정작 의료개혁의 수혜든 피해든, 모든 결과를 고스란히 안게 될 국민에게는 '지겨운 감자'로 치부되고 있다. 국민보건의료의 입장에서, 성분명 처방의 득과 실이 무엇인지 냉정히 분석하고 판단하기 위한 적극적인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성분명 처방은 약 처방에 특정회사의 상품명을 적시하는 대신 해당 성분을 표기하는 것이다. 약의 선택권을 의사에게서 환자에게로 옮겨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성분명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면, 약사의 도움을 받아 처방된 성분의 여러 약 중에서 가격과 인지도 등을 고려해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같은 처방이라도 환자의 선택에 따라 약값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그 효능은 동일하다. 정부의 효능검증 시스템을 통해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약품 효능에 대한 신뢰확보는 정부가 책임지고 수행해야 한다. 이는 성분명 처방에서든 상품명 처방에서든, 의료시스템의 기본 전제이다. 보다 확실한 약효검증 시스템 구축을 촉구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겠지만, 약효 불신으로 성분명 처방이 불가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의사들이 약효를 불신하는 카피약들이 지금도 수많은 병의원에서 버젓이 처방되고 있지 않은가? 약효는 떨어지고 가격은 높다고 말하는 이런 약을 지속적으로 처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약효검증이 제대로 수행된다면 처방의의 환자약력관리도 어려울 게 없다. 게다가 약국에서 투약과 함께 발행되는 조제내역서를 통해 의료소비자인 환자에게 모든 정보가 공개되면, 병의원의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이 미진하여 여러 처방에 의한 동일약제 중복투약 방지, 병용금기약물 검증, 환자 알권리 보장이 쉽지 않은 지금보다 안전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국제경쟁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국내 제약업도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의 여력 없이 소위 카피약 생산에만 집중하여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같은 약이 넘쳐나는 과당경쟁의 시장을 형성, 자사약의 처방촉진을 위해 막대한 리베이트 비용을 지출하는 비정상적 의약품 유통구조가 개선될 것이다. 성분명 처방이 되면 리베이트가 의사에게서 약사에게로 고스란히 이전될 것이라는 주장은 성분명 처방은 약 선택권을 의사에게서 환자 본인에게로 옮겨놓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급속하게 노령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사회보장제도가 효율적으로 정비되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성분명처방은 건강보험과 보건의료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개혁을 촉발할 단초이다.

현재 실시되는 국립의료원의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다. 시범사업이 실시되었다는 것은 환영하고 기대할 만한 일이나, 이를 통해 성분명 처방의 구체적 시행방법을 연구하고, 드러나는 문제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우리 사회에 가장 알맞은 형태를 찾아야 함에도 국민보건의료의 한 축을 짊어진 의사들이 비협조를 넘어 반대 일색인 현실이 염려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이번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에 포함된 칼시트리올 등 5종의 전문의약품은 부작용을 우려해 처방에 의해서만 복용하도록 의사들이 주장해왔음에도, '오래되고 안전성이 확보된 약품들, 쉽게 말하면 수퍼판매가 가능한 약'이라는 주장을 하는 의사가 있는 것을 보면, 반대를 위한 궁색한 변명을 만들기에 급급해 보이는 것이다. 성분명 처방과 관련한 진정한 문제는 바로 이런 것, 대의를 무시하여 알면서도 모른 채 하는 비겁함을 넘어, 본질을 호도하여 국민의 무관심을 촉발하려는 것이 아닐까?

김용관 울산시약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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