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공무원등 24명 '숲생태해설사' 활동
초등생·시민등 1000여명에 생태강연 호평
악보도 손수 만들며 장구장단 전수 '신명'
배우고 가르치고 봉사 '세가지 기쁨' 매력

지난 6월 말 기준 울산 인구는 109만2494명이다.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의 5.6%인 6만1421명이다.

여기에 60~64세 미만의 인구 3만1642명을 포함하면 약 9만여명의 노인들이 울산에 살고 있다.

노인들이 황혼을 보내는 다양한 방법 중 선호되고 있는 것 중 하나로 단연 노인일자리 사업이 손꼽히고 있다.

월 20만원의 용돈벌이가 되는 동시에 '노인도 일할 곳이 있으며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어 이 사업에 대한 노인들의 호응은 기대 이상으로 높다.

울산은 총 18개 기관에서 44개의 노인일자리 사업단을 꾸려가고 있다.

여기에 30억6271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며 2237개의 일자리가 배정돼 있다.

60세를 은퇴 적령기로 봤을 때 2000여개의 일자리는 9만여명의 노인들을 감당하는 데 터무니없는 숫자이기도 하다.

노인일자리 뿐만 아니라 봉사활동, 경로당 또는 복지회관 프로그램 참여 등으로 분산되는 점을 감안해도 좀 더 늘어났으면 하는 것이 노인들의 바람이다.

일자리 유형을 살펴보면 교육강사로 파견되는 경우도 있고 노노케어, 환경정비, 교통안전, 불법광고물 단속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큰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일자리 중에서도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발휘하면서 20만원의 월급에 덤으로 보람까지 챙기는 일자리와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을 소개한다.

숲 생태 해설사

천송일(64)씨는 30여년간의 교직생활을 은퇴한 뒤 올해 3월부터 한달동안 숲 생태 해설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뒤 대한노인회 중앙회로부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천씨는 "숲 생태 해설사는 가르치고 배우고 봉사하는 세 가지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울산의 공원과 녹지는 다른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지만 정작 이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는 나무와 풀의 이름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이 천 할아버지를 숲 생태 해설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천씨는 "내 스스로의 만족감도 크지만 아이들도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나무와 풀, 무생물의 이름을 알아가는 것을 재밌어 한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현재 울산에는 24명의 숲 생태 해설사가 활동하고 있다. 천씨와 동료들은 주로 남구 지역 초등학생들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10월까지 1000여명의 새로운 제자를 배출했다. 이들 중 70%는 천씨처럼 교장선생님이었던 경우이며 공무원 퇴직자들도 포함돼 있다.

김인도(67)씨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하모니카 연주를 멋드러지게 한 곡 뽑아낸다. 아이들은 자주 들을 수 없는 악기소리에 어느덧 떠들던 입을 멈추고 김 할아버지에게 집중한다.

학생들이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김씨 교육의 핵심이다. 바람에 떨어진 잎을 살펴보고 나무 껍질을 만져보면서 아이들은 나무를 배운다.

김씨는 숲 생태 해설사들 중에서도 '식물박사'로 꼽힌다. 그는 2000년에 퇴직한 이후 4년동안 식물공부에 매달렸다. 그는 식물도감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눈으로 확인했다.

"퇴직한 뒤 잠시 경주에서 가이드로 활동하던 중 우연히 숲 생태 관련 교육을 받게 됐는데 그 때 이게 내가 남은 평생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단순히 나무 이름을 아는 것을 넘어 자연을 스승으로 여기고 지혜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할아버지 선생님으로부터 해설을 들은 김동현(13)군은 "할아버지가 재밌게 이야기해줘서 평소 그냥 지나쳤던 나무 이름을 알게 돼 유익했다"고 말했다.

얼씨구~ 장구 선생님

김명조(77)씨는 매주 목요일이 되면 15명의 아이들과 신명나게 한 판 논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 보다 함께 즐기는 게 더 중요하지"라며 장구 수업시간을 '한 판 논다'고 표현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40년전 군대 제대 뒤 처음으로 장구를 접했다. 당시 부산에 살던 김 할아버지는 우연히 장구 소리를 듣고 무작정 국악원을 찾아가 장구를 배웠다.

"덩기덕 쿵~ 덩기덕 쿵~" 장구연주하는 김씨 얼굴에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김씨는 "장단을 맞추다 보면 자제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그만 학생들 앞에서 노래까지 한 곡조 뽑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이렇듯 즐겁고 보람도 크지만 김씨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장단이 그려진 악보를 손수 만드는 것은 기본이며 장구 손질도 도맡아서 하고 있다.

김씨가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장구 선생님이 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로 윤소정, 이선영, 정지선… 등 한 명 한 명 제자들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해 냈다. "아이들은 대개 휘모리, 세마치, 굿거리 등 장단을 잘 따라한다"며 "특히 이 아이들은 내가 같이 공연을 다니고 싶을 정도로 소리를 표현해 낼 줄 알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김 할아버지가 언젠가 꼭 이루고픈 바람이다.

김씨는 담배나 술도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열심히 장구를 가르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방학 뿐만 아니라 학기중에도 장구를 배우러 나오는 아이들이 줄지 않고 있다.

김씨는 "이제 내 남은 평생동안 아이들에게 장구를 간드러지게 두드릴수 있는 기술도 전수할 테지만 무엇보다 연주를 즐길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경상일보-사회복지포럼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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