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가 세상에 태어났으니 뜻은 마땅히 기걸차야 할지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지만 영웅이 시대를 만들기도 한다

북풍이 점차 차가워 오는데 도리어 나의 피는 뜨거워진다

비분강개해 일어났으니 마땅히 쥐새끼 같은 도적은 잡아야지

모든 우리 동포들이여 내가 세운 공업을 잊지 말지어다

만세만세요 대한독립이로다'

1909년 10월 거사를 이틀 앞둔 24일 하얼빈 교민의 집에서 안중근이 자신이 할 일을 떠올리며 비분강개하며 한시 한 수를 읊었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며 구국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의 기개가 잘 드러난다. 안중근의 뜻처럼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지만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국권침탈의 시기에 용기있는 독립투사가 있었으며 이들의 희생으로 국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안중근은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 그 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사살하기로 결심했다. 동지 우덕순과 상의하여 승낙을 얻고 동지 조도선과 통역 유동하와 함께 이강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만철이사 다나카 세이타로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곧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독립운동가 안중근은 위대한 교육가이자 사업가였다. 조국의 백성을 가르쳐 똑똑하게 만듦으로써 나라가 부강해 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비를 털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우고 스스로 교장과 교사가 되어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또한 학교운영에 필요한 재정조달을 위해 미곡무역상을 경영했고 평양 근교에서 석탄광산 채굴경영을 했었다.

"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 미래입니다"는 국가보훈처의 캐치프레이즈이다. 이는 우리가 보훈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 본받아야 할 점과 고쳐야 할 점을 배워 밝은 미래를 이룩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역사 속의 한 인물에게서 또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많다. 우리는 안중근의 업적 속에서는 그의 기개와, 교육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추진력을 본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대사회에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어린 꿈나무들은 자기 신념을 굳게 믿고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본받았으면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의 앞날에 밝은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은 뜻있고 용기있는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권진숙 울산보훈지청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