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생물학에 있어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위대한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DNA이중나선구조'는 젊은 과학자 미국의 왓슨(James Dewey Watson, 1928~ )과 영국의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 1916~2004)에 의해 발견됐다.

이들이 1953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핵산의 분자구조: 디옥시리보핵산의 구조'라는 900 단어 분량의 한 페이지짜리 짧은 논문을 발표한 이래 생명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응용하려는 분자생물학이 생물학의 가장 큰 기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유전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각종 생명현상의 비밀들이 풀려가기 시작했으며, 반세기가 지난 현재 생물학은 과학의 정점에 올라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분야에 매달리고 있다.

왓슨과 크릭은 DNA 구조 발견의 공로로 다른 한 사람의 조력자 윌킨스(Maurice Hugh Frederick Wilkins, 1916~2004)와 함께 지난 1962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서로 다른 전공자들의 공동연구와 좋은 팀워크 덕분이었다. 동물학에서 생화학자로, 다시 생물학자로 변신한 왓슨과 물리학자였던 크릭은 공동연구와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 최초의 사례였다.

현대의 과학연구가 대부분 공동연구 형태로 이뤄지며 전공분야가 다른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것도 이젠 흔한 일이지만 당시는 공동연구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 당시 여러 가지 면에서 왓슨과 크릭이 속했던 캐번디시 연구소보다 앞서 있던 킹스 칼리지가 경쟁에서 실패한 이유 중 하나가 공동연구자들의 불협화음 때문이었다.

좋은 팀워크를 가진 조직이 얻을 수 있는 시너지효과란 단순히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된다는 단순한 계산방식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반면, 그렇지 못한 조직의 경우 오히려 개인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위대한 발견이 가능했던 두 번째 이유는 젊은 연구자들이 가질 수 있는 도전적인 진취성과 탁월한 순발력을 들 수 있다.

당시 미완의 왓슨과 크릭은 각각 25세와 37세의 젊은 과학자였으며, 두 사람은 경쟁심이 강하고 도전적이며 관습과 전통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성격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어떤 권위나 이론들도 그들의 독창적인 생각을 가로막을 수 없었으며, 젊고 학문적으로 미숙했기에 그들은 더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었다.

DNA사슬이 똑바로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 비틀려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발상의 전환도 그렇기에 가능했다. 그들도 다른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DNA 구조를 확립하는 데 수많은 실수의 연속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는 즉시 다른 대안을 찾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연구자가 자신들의 업적과 경험에 매달려서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때 그들은 성큼성큼 새 길을 걸어나갔던 것이다.

왓슨이 특유의 자유롭고 쾌활한 성격을 가진 반면, 크릭은 신중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처럼 국적도 다르고 성격 또한 다른 이들이 만나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명한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고, 일찍부터 유전물질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열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이 책을 접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처럼 단순히 읽고 넘어갔다면 위대한 발견은 물론 오늘과 같은 생명과학분야의 발전은 좀 더 지체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왓슨과 크릭의 위대한 발견이 우연이 아니라 준비하고, 도전하며, 노력하여 만들어 낸 결과라는 사실이 가치를 더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결과가 변화와 혁신이 강조되는 오늘날에 필요한 인재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박상규 울산대학교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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