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심정 노인이 더 잘 알아" 학대예방 활동
홍보지 나눠주고 고민도 들어주며 보람 키워
버스타고 걸어서 40분 먼길 '찾아가는 말동무'
거동 불편한 친구와 얘기 꽃 외로움도 씻은듯

노노케어분야에 노인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고령화 사회를 잘 대처하는 방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청소며 빨래를 도와주고 말벗이 돼 주는 것은 마치 자식이 더 생긴 것 같아 좋다. 그러나 노인이 돌봐주면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자식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울산에서는 노노케어, 소외계층 주거환경개선, 교통안전 지킴이 등의 복지형 일자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복지형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는 노인들은 봉사와 일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중 씨밀레진정한친구사업단과 노인학대예방지킴이로 활동 중인 노인들을 소개한다.

"노인학대 신고는 1577·1389 입니다."

김이진(64) 할머니가 노인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거리 캠페인에 나섰을 때 하는 말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1577·1389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몰랐던 김 할머니지만 이제는 노인학대 신고 전화번호 뿐 만 아니라 신고절차와 학대 유형에 대해서도 술술 설명할 수 있다.

김 할머니는 벌써 2년째 '노인학대예방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나이가 많다 보니 내용을 익히느라 처음에는 고생 좀 했지. 근데 지금은 솔직히 시켜만 주면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인학대예방지킴이는 주로 시내나 시장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나 경로당을 일터로 삼고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피켓을 들고 4시간 동안 가두 행진을 하거나 홍보자료를 나눠준다. 또 젊은 층을 대상으로는 효 서명을 받고 노인들에게는 간단한 상담도 해 준다.

김 할머니는 "한 순간의 피곤함을 참고 펼친 캠페인의 효과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5년, 10년 뒤에 노인 학대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며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2년동안이나 활동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50여회에 걸쳐 캠페인을 벌이면서 얼마 받고 이런 거 나눠주냐면서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인학대예방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가게를 돌아다니던 김 할머니는 젊은 사장들한테 고개 숙이면서 부탁해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수고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만 기억하면서 일하지. 거절당했다고 한 번 부끄러워하기 시작하면 이 일 못 해"라며 일을 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팔십을 넘긴 시어머니를 41년째 모시고 살고 있는 노숙자(64) 할머니는 지킴이 활동으로 받는 느낌이 남다르다. 노 할머니는 "며느리인 내가 노인학대예방지킴이로 일하니 한 번씩 시어머니때문에 힘들어도 절대 나쁜 소리는 못 한다"고 고백했다.

노인학대 예방 캠페인을 하면서 노 할머니는 자식에게 맞아 등에 시퍼렇게 멍이 든 노인이나 자식에게 돈을 다 뺏긴 노인들도 만났다.

'효자도 불효자도 부모가 만든다'는 말을 가슴속에 묻고 학대 받아도 속으로 삼키는 노인들이 점점 줄어들었으면 하는 것이 두 할머니의 가장 큰 바람이다.

진정한 말벗 돼주기

최정내(81)·윤미순(77) 할머니는 매주 월·수·금요일 오후만 되면 3년지기 친구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버스도 타고 걸어서 40여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할머니, 우리 왔어"라며 들어선 곳은 몸이 불편해 하루종일 누워있어야 하는 노인이 있는 살고 있는 집이다.

두 할머니는 씨밀레진정한친구사업단으로 일하고 있다. 총 24명의 노인들이 2인 1조로 각각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들과 일하고 있다. 이들의 일은 노인들의 집을 방문해 외로움을 달래주고 생활의 활력소가 돼 주는 것이다.

최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서 힘든 일은 못하고 그냥 와서 이야기하면서 놀다 간다"라며 "하는 거 없어도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니까 나도 보람돼"라고 말했다.

말벗이 돼 주고 안마를 해 주는 일이 전부이지만 이 것만으로도 재가 노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최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누워있던 할머니와 윤 할머니도 따라 부른다. 할머니들이 부르는 흥겨운 노래 가락이 금세 방 한 가득 울려퍼진다.

윤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면 할머니가 누운 채로 손을 이래저래 흔들면서 흥겨워 하시고 무뚝뚝하던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며 "이렇게 친구랑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는 즐거운 일자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10월의 마지막날인 지난 31일의 만남이 재가 할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할머니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사 들고 찾은 두 할머니는 아쉬운 마음에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최 할머니는 "공식적으로는 일이 끝났지만 할머니 못 보면 우리가 섭섭해서 안 된다"며 "앞으로 한 달에 한 두번 정도는 여기로 계속 출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씨밀레진정한친구사업단으로 일하는 것은 단순한 월 20만원의 용돈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왕복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도 마다않았고 한 번씩 몸이 안 좋아도 기다릴 할머니 생각에 한달음에 달려간 소중한 일자리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경상일보-사회복지포럼 공동기획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