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를 앞둔 A양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밤 11시가 넘어서 시가지를 배회하고, 저들만이 아는 장소에서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다 담임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와서 내용을 들은 어머니의 첫마디가 "수능이 며칠 남았다고! 학교에서 학생 관리를 이렇게 하는 겁니까? 우리는 학교만 믿고 있는데 학교가 무책임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왜 이제서야 알려줍니까?"였다. 화가 난 어머니와의 상담은 불가능했고 서로 불신감만 쌓여 지도를 위한 본론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관심과 책임에는 관계없이 교사나 학교에 책임을 묻고 싶어하고 원망으로 항의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담임이 알고 있었다면 왜 지도도, 연락도 하지 않았겠는가, 책임 회피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교육의 책임과 의무를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서다. 고등학생 정도면 행동의 책임이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하며, 그러한 책임의식의 형성에는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행동에 대한 책임 의식은 커녕 제멋대로, 기죽지 말라고 배워서 그런지 교사로부터 주의를 받으면 변명이 예사요, 불손하기 짝이 없다. "선생님이 뭔 데요, 싫은데요,"라고 말하거나, 거부를 암시하는 신체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하나의 경향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교사의 지도가 학식이 되고, 예절과 습관이 되며, 행동양식이 되어야 하는데 지도를 거부하고 행하지 않으려고 하니 가르침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 무절제와 몰가치를 진정한 가치라고, 그걸 저희들의 권리라고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는지, 부모들의 작품처럼 만들어 놓은 아이들이 다음날 부모도 못 알아보는 인간이 돼 버리는 현실의 사건들을 모른다는 말인지, 그렇게 막돼 먹은 아이들이 앞으로 제대로 된 인간 됨됨이를 알 것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 사회에서의 자기 책임을 이해하고 행동할지 걱정이다.

 귀한 자식이라, 세상에서 저 혼자만 잘났다는 의식을 아이들의 머리 속에 심어놓고, 자기 입맛에 맞는 고급반찬 골라서 잔뜩 먹여 놓으니 식곤증에 혼미한 정신은 선생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제 욕심 채우기, 남 무시하기, 어려운 일은 하기 싫고 배우기도 싫은 아이들이 과연 예의나 지식의 필요성을 알 수 있을 것이며 하물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어찌 알 것인지 이런 아이들을 보면 암담한 생각이 든다.

 내 자식은 방종해도 방탕이나 패륜으로 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일이 아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믿고 방치하지 말고 그 성장에 조금 더 개입해 볼 때이다. 형편이 이러한데 일방적으로 교사나 학교가 모든 책임을 지라는 요구에는 무리가 있음을 이해하고 좀더 긴밀한 의논을 위해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교사들의 보편적 양심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교육의 결과에 대해 만족스럽게 책임을 다했다고 느낄만한 결과를 얻기는 대단히 힘들다고 여긴다. 교사의 직분은 끝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양심이 의심 받는 세상, 참으로 속이 탄다. 배울 준비가 안된 학생도 가르쳐 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할 뿐만 아니라 교사나 학교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애써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이 아직은 많이 있어 실망을 속으로 삭이며 교실로 향하는 교사들이다.

 제발 소신껏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의 기를 죽여서도 안되겠지만 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교사들의 기를 죽이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면 학부모, 학교, 사회 모두가 좀더 신중하고 진지해져야 겠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