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치는 소(沼)와 기암괴석(岩)은 예로부터 수많은 전설의 소재가 돼왔다. 인명과 가축을 해치는 이무기를 물리친 영웅 이야기, 비를 타고 승천한 용이 살았던 웅덩이, 기이한 형상으로 갖가지 이름이 붙여진 바위 등등.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구수리는 이러한 전설적 소재를 풍부하게 갖춘 곳이다.

 아홉개 넓고 깊은 웅덩이인 늪이 있었다는데서 유래한 구수리는 태화강 상류인 언양 남천가를 따라 동서로 길게 형성된 마을로 구수, 대동, 무동마을 등 3개의 행정마을로 형성돼 있다. 1973년까지만 해도 울주군 삼남면에 귀속돼 있었으나 주민들의 행정편의상 언양읍으로 이속됐다. 남천을 경계로 언양읍과 삼남면을 가르는 경계를 유일하게 어기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 3개 마을은 법정리로 묶여있을뿐 왕래하는 도로도 없고 마을간에 교류마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별개의 마을이다. 언양읍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구수마을로 이곳에서 대동마을로 가려면 다시 울산~언양간 국도로 나와서 2~3㎞ 가까이 우회해야만 된다. 무동마을도 범서방면으로 반천다리를 건너 2~3㎞나 더 가야한다.

 별개의 동네에 이장마저 서로 달라 같은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런 곳이기도 하다. 장운선 구수마을 이장(55)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들이 그저 구수리라는 말만 듣고 구수마을을 찾아오는 경우엔 참 난감하다"며 "대동이나 무동마을로 가는 길을 설명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같은 마을이 맞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들 3개마을을 묶어주는 공통점이 있다면 물가라는 점과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응달이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 구수리 3개 마을에는 밤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밤나무가 음지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특히 구수마을 뒷산은 언양일대에서 가장 큰 밤나무단지다.

 구수마을은 70년대 이전만해도 물가에 늪과 숲이 어우러진데다 층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물가마을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그러나 울산~언양간 고속도로와 국도, 언양하수종말처리장 등이 들어서면서 숲은 사라지고 들판이 줄어든데다 소음피해에 보상불만 등이 잇따르면서 마을 인심도 예전처럼 오붓하지가 못하다.

 박종관 할아버지(73)는 "확장된 국도가 마을앞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땅만 파먹고 살던 농사꾼들의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며 "물 대면 논이 되고 물을 말리면 밭이 되는 문전옥답을 잘라내고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푸념했다.

 농민들은 도로확장과 함께 보상받은 돈으로 언양 직동들이나 반송들의 농지를 매입했는데 보상가와 매입가의 차이가 커 땅만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구수마을은 140여가구가 거주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약 100가구가 인근에 위치한 (주)금강의 사원아파트이기 때문에 실지로 40여가구의 작은 마을이다. 사원아파트 입주민들은 "마을속의 마을"을 이루고 있을 뿐, 토박이 주민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주민들도 내왕이 없는 점에 대해 큰 불만도 없다.

 곡식더미를 쌓아놓은 형상의 노적봉을 사이에 둔 대동마을은 대암댐이 생겨나면서 수몰지역인 둔기리 주민들이 일부 옮겨와 60여가구를 이루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도로와 군부대로 인해 "소란스런" 마을이 됐다.

 김용태 대동마을 이장(51)은 "3개의 석산과 레미콘 공장으로 다니는 대형 덤프트럭과 삼동·서창·부산방면으로 가는 차량이 하루에 수백씩 다녀 인도도 없는 마을길을 다니기가 겁이 날 정도"라며 "차량소음과 사고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주민들의 정서도 많이 갈라진 양상을 띤다"고 말했다.

 몇해전 인근에 석산이 들어서려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이 되레 화가 돼 돌아온 것이다. 석산은 마을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겨 건립됐지만 석산의 돌을 운송하는 차량이 결국은 대동마을 가운데로 지나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동마을은 또 예비군훈련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마을 전체가 주차장으로 변한다. 울주군 예비군훈련부대인 7765부대 1대대가 마을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지를 떠돌다 30여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김태진씨(66)는 훈련이 없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마을길이 차량들에게 점령을 당해 경운기라도 빼내려면 부대를 향해 차를 빼달라는 방송를 하는 일이 잦은 형편"이라며 "연발사격이나 야간사격이 있는 날이면 TV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음이 심하다"고 말했다.

 반천현대아파트와 마주한 무동마을은 물가에 근접해 마을이 생겨나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별로 없지만 땅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강 건너편의 자그마한 들판이 무동마을의 농지 절반을 차지할 정도지만 주민들은 농지가 없는 마을의 환경을 부지런함으로 너끈히 극복했다.

 무동마을 한 아주머니는 "농지가 적은 만큼 정성을 몇배로 기울인다"며 "알뜰한 만큼 서로를 위하는 정성도 각별해 죽기 전에 이 마을 떠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이라도하듯 마을 곳곳 빈터에는 배추, 무, 인동초, 과수나무가 비좁을 만큼 많이 심어져 있다.

 마을주민들은 국도로 접어드는 길목이 다소 위험하고 아슬해도 크게 탓하지 않는다. "내가 좀 더 조심하면 되지"라는 인식이 더 깊기 때문이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