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해의 멸치잡이 배들이 정자 앞바다를 주름잡는 가을부터 봄까지 매년 되풀이 된다. 그래서 겨울은 어민들에게 더 답답하고 속 터지는 계절이다.

원인은 말도 되지 않는 조업구역이며, 거기에 바다의 폭주족과 같은 남해의 멸치잡이 배들이다. 울산의 배도 아닌 남해의 배들이 울산 앞바다의 멸치를 싹쓸이하고, 어장까지 망쳐놓는 일이 되풀이 되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얼핏 웃기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속내는 더 기가 막힌다.

바다야 애초에 국민의 바다이고 국가의 바다이지만, 그 바다에도 이리저리 선을 그은 조업구역이라는 게 있다. 정자 앞바다의 조업권은 광역시 승격 이전인 70년대 설정된 채 지금껏 30여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광역시가 되고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경남시절의 규정, 그대로다. 이게 남해의 멸치잡이 배들이 정자 앞바다에 당당하게 출어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이다.

거기다 방어진 울기등대부터 부산 경계선까지는 해안에서 2000m 이내의 연안은 조업금지 구역이지만, 유독 울산과 경북의 경계에서 울기등대까지는 조업금지 제한조차 없다.

결국 남해의 멸치 배들이 정자 앞바다에는 연안에서도 조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당시 왜 정자 앞바다만 조업금지 구역에서 빠졌는지도 의문투성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이 규정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한밤에 멸치 떼를 따라 연안 가까이서 조업하는 남해의 멸치 배들이 어민들의 그물을 찢고 달아나는 일은 이제 연례행사가 됐다. 정치망에 목을 매고 있는 울산 어민들은 어쩔 수 없이 밤잠을 설쳐야 한다. 주로 야간에 조업하는 기선권현망 어선들이 정치망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리면 한 순간에 전 재산이 날아간다. 범인이 잡히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뺑소니라도 치면 속수무책이다.

용케 내 그물을 피해 가기를 용왕님께 빌어야 하고, 내일도 온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정자어민은 그야말로 자기의 바다에서 유배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조업권 시비는 국가 간 분쟁의 단골메뉴이다. 전남 무안 어민의 낙지 분쟁처럼 지역 간 분쟁에도 빠지지 않는 감초다.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누구에게 귀속시키느냐에 따라 이해득실이 천양지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와 법의 논리가 바다에도 공존하게 된다. 그래서 조업구역을 바꾸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쉽지 않다는 해양수산부의 입장도 일면 이해가 가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정자 어민의 피해와 눈물은 이미 조업구역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지금 정자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남해 멸치 배들의 횡포는 조업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며, 범죄의 차원이다. 언제까지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은 어민들 간의 신사협정에 기대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뺑소니범의 양심에 어민의 생존을 맡길 수 있겠는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야 한다. 2003년의 협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상 어정쩡한 중재안은 해결책이 못된다. 해양수산부는 하루 빨리 법을 개정해 잘못된 조업구역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유일하면서도 명쾌한 해법이다. 행여 남해 멸치 배들의 눈치 보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김남조 시인은 겨울 바다를 보고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린다고 읊었다. 먼 바다에 북으로 길게 이어진 파시, 겨울 바다의 만리장성을 보는 요새 정자 어민들의 심정이 딱 그 마음일 것이다. 더 이상 정자 어민만 눈물짓게 해서는 안 된다. 정자어민은 봉이 아니다.

최윤주 북울산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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