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에 검증되지 않은 한사람의 말에 대통령 당락이 좌지우지(左之右之)되는 듯 여론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고 또 다른 한사람의 증언에 세계적 기업과 국가기관의 신뢰가 실추되고 있다. 시스템에 의한 검증의 과정이 없는 사회상은 대의적으로 부끄럽기가 그지없고 나라의 미래마저 걱정된다.

최근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양심선언'이 세상의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있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두 조직을 쥐락펴락하는 것 같아 왠지 개운치 않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폭로가 진정한 용기라기보다는 신뢰와 의리를 저버린 행동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왜 본인이 삼성의 핵심 조직인 구조조정본부에서 근무할 때는 침묵하다가 '초특급'대우를 받고 난 뒤 삼성 관련 의혹을 폭로했을까. 이것이 지켜보는 이들이 갖는 최대 의문이다.

그는 "삼성에 들어간 것은 인생의 실수다. 나에게는 죄인으로서 힘든 여정만 남았다"며 이번 폭로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양심선언 동기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뒤따른다.

삼성 측은 "폭로 배경이 순수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7년 동안 연봉과 성과급, 스톡옵션 등을 포함해 102억원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또 삼성에서 퇴직한 후 올해 9월까지 3년 동안 고문료 명목으로 매달 2000여만원을 받았으며 최근까지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다가 고문 계약이 끝난 시점에 이르러서야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유가 의심스럽다는 것이 삼성 측의 설명이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판가름하기 전에 양심선언의 시기적인 문제를 되짚어 본다면 이런 의혹은 애초부터 제기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검찰을 떠난 이후 제2의 일터로 택한 삼성. 양심고백서에서도 언급했듯이 망하지 않고 꼬박꼬박 월급을 주고 사치까지 할 수 있게 해준 삼성 재직시절 당시 생각나지 않았던 '양심'이 퇴사 후에 비로소 발동한 것일까.

등 따습고 배부를 땐 조직을 먼저 생각하다가 춥고 배고프니까 악의가 생겨 자신의 주인을 덥석 문 꼴이 돼 버린 것 같다.

또 그가 간과한 것 중 하나, '우리'라는 믿음을 깬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말하고 생각할 때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우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우리 나라' '우리 회사' '우리 동료' '우리 가족' 등 결코 혼자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이 단어는 네편 내편의 흑백논리가 아닌 사람들의 속내에 담겨 있는 '우리'라는 개념이 사회의 지탱요건이고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우리 국민들의 장점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의 폭로가 정당하더라도 이런 사회의 지탱요건을 스스로 무너뜨리지는 않았는지 씁쓸하다. 또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언론에 비춰지는 그의 모습을 볼 때 오히려 서글픈 생각이 앞선다.

벌써부터 대기업 내에서는 배신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해 오고 있다고 한다. 이제 사람을 고를 때 면접관 옆에 관상가(觀相家)도 불러 '입사 후에 회사를 배신할 관상인가 아닌가'를 따져봐야 할 판국이란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 사회 등 모든 조직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때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경우 합법성과 합목적성을 두고 융통성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일진데 직원들이 퇴사 후 뒤통수를 치는 양심선언이 난무한다면 우리나라의 기업, 조직, 국가는 어떻게 될지 걱정부터 앞선다.

김두겸 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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