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1992년도부터 매월 한명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그분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 정신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오고 있다. 2007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일제식민지치하 저항시인으로 유명한 윤동주이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1945년 2월 광복을 불과 여섯 달 남겨두고 2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시인이며 어두운 시대적 현실을 아파하고 지식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갈망했던 시인이다.

윤동주는 1917년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의 기독교 신앙이 두터운 가정에서 태어나 8세에 기독교 학교인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고, 14세에 중국인 관립학교에 다니다가 용정으로 이사해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1935년 18세에 전학해 간 평양 숭실 중학교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학교가 폐교의 위기에 처하자 자퇴를 한다. 1941년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던 24세에는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으나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의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1942년 2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입교대학 영문과로 옮긴 후 학업도중 항일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이름모를 주사'를 맞고 비통하게 세상을 떠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대표작인 '서시'이다. 서시에서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괴로워했으며,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는 소명의식을 결의하고 있다. 윤동주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괴로워했을까. 윤동주는 28살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식민지 치하라는 애통한 상황 속에서 지식인인 본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괴로워했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문화정책, 민족말살정책 속에서 언론의 자유는 억압당하고 있었고 우리말 사용도 금지되고 있었던 시기이다. 이런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항상 밝은 미래를 꿈꾸어왔다.

비록 윤동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아까운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의 순수하고 고결한 정신은 그가 남긴 시와 함께 우리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다. 2007년도 마지막 해를 보내면서 윤동주의 시와 함께 우리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이새해 울산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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