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문턱에서 아직도 2% 부족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995년 전남 여천군 앞바다에 좌초된 유조선 씨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에 이어, 발생한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몇 가지 사건 중에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이번 사고 후 쏟아진 국민적 관심은 끔찍한 재앙 속에 희망을 남겨주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지켜보며 "이렇게 빨리 복구된 적은 없었다"는 외국의 방재 전문가의 말을 한국사람 특유의 근면성, 신속성으로 부각시키는 언론의 보도행태가 안타깝기만 한 것은 왜 일까? 그건 아마도 지금까지 언론에서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의 오염 피해만 강조하는 가운데 태안주민의 안전과 허술한 초기 재난방재 작업으로 인한 제2의 피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엄청난 유해물질(hydrocarbons & benzene)이 해변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방재작업과 병행되었어야 할 것이 노약자(특히 소아, 임산부, 면역력이 약한 자 등)에 대해 신속히 대피시키는 것이며, 초기 현장에서 방재작업을 수행하는 분들이 개인보호장비 (PPE : peprsonal protection equipment class A, B)를 착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업자들은 독성물질이 그대로 인체에 흡수될 수 있고 방제능력이 떨어지는 PPE class D를 일부만 입고 있으며, 유독물질이 흡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안전마스크(charcoal filter mask)도 없이 작업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휘본부에서도 위험물질을 알리고 개인보호장비를 갖추고 작업을 하도록 알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경고한 적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한술 더 떠 취학기 이전의 아동들이 재난현장에서 오일을 닦고 있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생생히 전달했다.

현재 방제작업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나 지역 주민들 중 일부는 두통,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으며, 유출 직후 방재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는 급성 중독에 가까운 증상이 일어났음이 보고되고 있다.

정부의 재난대책은 재난대책의 전문가들이 가장 경계하고, 피해야 할 'Paper plan syndrome(서류로만 완벽한 계획이고 실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재난대책을 말함)'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재난현장에서 책임을 맡아 지휘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지휘체계(ICS : Incident command system) 역시 없었다는 지적에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난현장에 필요한 항목들을 집계하고, 재난현장으로 유입되거나 현장에서 유출되는 인력이나 물자들도 철저히 관리되고, 지원인력이나 물품이 도착하면 우선순위에 따라서 필요한 장소에 제공할 수 있는 지원체계(database system)도 없었다.

원유에 들어있는 유독성 물질인 하이드로카본(hydrocarbons), 벤젠, 톨루엔 등이 생체에 매우 위험한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관도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또 현장 의료인에게 현장의 독성물질의 노출농도를 의뢰하고 초기중독현상에 대한 지식과 중독이 의심되면 환자를 후송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중독에 노출된 사람을 가려내는 감시체계를 갖추도록 했어야 한다.

재난현장의 초기에 교체 없이 장시간 작업한 사람들은 향후에 많은 합병증을 유발 할 수 있다. 향후 기형출산, 암발생, 만성질환으로 이환 등 재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사고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많은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울산지역은 어떤 실질적인 대책이 수립되어 있는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기관들의 각종 문제점을 재정비해야 하며 타산지석의 예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홍은석 울산대학교병원 울산권역응급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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