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모지인께서 중국의 광활함을 얘기하시면서, 우리나라는 그 광활함의 동쪽 끝단에 마치 턱걸이하는 동물상 같다고 비유하셨다. 그 가운데 포항은 꼬리부분, 울산은 항문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에 울산은 퇴비가 많은 지역이 되어서, 땅이 비옥하고 물질이 풍부하다고 농섞인 말씀을 하셨다.

 과거부터 울산은 먹거리가 풍부한 지역이었다. 넓은 들은 없지만 야트막한 산, 강과 바다가 지척에 있고 기후가 온난하며 강수량이 풍부해 곳곳에 먹거리가 널려 있던 지역이다. 공업도시가 되면서 환경훼손으로 자연 생산물은 줄었으나 공산품이 풍요를 이어 주었다.

 지나간 통계를 보니, 울산은 공산품생산액, 항만물동량, 1인당 소득과 납세규모 등 각종 경제지표에서 전국 주요도시 중 선두그룹에 속한 것으로 나타나, 풍요지역이란 말을 실감나게 한다. 이러저러한 얘기가 지인이 말씀하신 "울산은 퇴비지역"이란 말씀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울산은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물질의 풍요가 앞서다 보니 부정적인 면도 많다. 그 중 하나가 근세사에 들면서, 울산은 자고나면 늘어나는 것이 술집이고 다방이란 것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선남선녀(?)께서 물질의 풍요를 업고 흥청망청하니 온갖 퇴폐문화가 판을 친 지역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과거 특별시, 직할시 등 퇴폐문화의 첨단을 간다는 타도시를 모두 제치고, 세인들 사이에서 ‘급할시’계급장을 하사 받았고, 퇴폐문화의 수석이 되기도 했다.

 또 전국에서 예체능학원이 제일 많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물질 풍요를 또한번 실감나게 한다. 그러면서 전국과 지구촌에서 모여 든 인구 백만이 넘는 급할시가 퇴폐문화로 끝없이 치닫는가 했더니, 그들의 가족이 울산에 정착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안정과 함께 삶의 질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배어 나왔다. 근자에 들어와 문화예술회관, 울산대공원, 문수축구장 등 굵직굵직한 문화공간들의 탄생의 계기가 된 것이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기존 퇴폐문화에서 삶의 문화로 탈바꿈한 이런 일은 기념할 만한 얘기이다.

 그렇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면, 울산은 레저천국에, 예능이 부분적으로 숨쉬는 지역으로 낙인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울산이 자랑하는 대공원은 레저에는 안성맞춤이나 독서, 유물감상 등 삶을 음미하고 사색하는 곳은 아니란 것에서 자랑거리와는 거리가 있다.

 체력단련을 통한 건강한 삶은 좋은 것이다. 건강해야 활력있는 생을 영위할 수 있고, 가정과 지역사회가 행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신문화가 결여된 건강한 삶은 자칫, 새로운 퇴폐문화를 조장하게 된다.

 우리말에 건강해야 술도 마시고, 삶도 즐길 수 있다고 한 말은 또 다른 퇴폐문화를 예고한 것이다. 이것을 제어하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정신문화이다. 정신문화의 본산은 사색과 감상을 통한 새로운 삶의 아이디어를 얻는 공간인 것이다. 그 좋은 대공원에 박물관 및 야외전시실, 도서관과 야외독서실이 없다는 것은 울산광역시의 어두운 부분이다.

 건강한 육과 함께 한차원 올라선 정신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갖추어져야 퇴폐문화가 척결되고, 지역민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조선시대 한 선비의 말을 인용하면서, 울산광역시의 가칭 역사박물관 건립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

 울산의 역사성과 정체성 등 정신문화를 사랑하면, 울산에서 살고 간 님들의 유적과 유물이 알고 싶고, 그것들을 역사박물관을 통해서 알아 가다보면 울산이 어떤 지역이란 것이 보일 것이다. 그 때 보이는 울산은 공해도시, 퇴페문화, 단순히 대공원을 달리고 산책하는 그런 울산이 아니란 것이 뼈저리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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