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행복하다. 43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영광스런 큰 상도 많이 받았고, 아동문학가로 책도 많이 펴내었으며 명예롭게 퇴임을 한 후, 각종 강의, 주례 등으로 바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감사한 일은 온 가족이 건강하고 부부사랑도 올해 40주년이 되도록 큰 싸움 한 번 없이 돈독했고, 4남매 자식들의 효도경쟁 속에 즐겁게 살고있다. 이제 필생의 작업으로 자전적 소년소설 한 편을 남겨서 사후에 빛나는 작가의 이름을 남기고 싶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칸트는 첫째,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둘째,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셋째,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다.

일이란 노동을 말한다. 노동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있다. 그리고 그 노동은 생산적이어야 진정한 노동의 가치가 있다. 잠자는 시간 외의 움직임을 모두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이란 목표지향적이고 인간적이고 건전한 생산을 위한 노동일 것이다.

일을 할 수 있으려면 건강해야 할 것이다. 육체만 튼튼해서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정신 건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도둑질을 하거나 남을 괴롭히면 그는 병든 사람이다. 반대로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아픈 사람 또한 병든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 정신과 육체가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사랑도 두 가지이다. 조건이 없는 사랑과 조건부 사랑이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부모 사랑, 부부사랑, 이웃돕기는 숭고한 아가페사랑이다. 부모자식간 재산다툼이나 부부간에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쟁을 하다가 갈라서는 경우는 사랑이 아니다. 서로 상대방에게 먼저 사랑을 베풀지 않고 상대로부터 받기만을 기다리는 에로스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꿈도 두 가지이다. 이룰 수 있는 꿈과 허황된 망상꿈이다. 이룰 수 있는 꿈은 노력에 따라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룰 수 없는 꿈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허무하다.

미국의 제임스 철도회사 사장은 청년시절 고향에서 친구와 같이 철도레일과 침목을 까는 공사장 인부였다. 그런데 20여년 뒤, 그는 철도회사 사장이 되었다.

어느 날, 고향마을에 찾아가서 옛날 일하던 공사장에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옛날 함께 일하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아직도 공사장 인부였다. 사장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친구에게 "자네는 아직도 이 일을 하는가?"하고 물었더니, "부끄럽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하루하루 번 돈으로 술 마시고 몇 푼 집에 갖다 주고 그걸로 만족하며 살았다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사장이 되었는가?" 그러자, 사장은,

"나는 그 때, 노동자로 일하면서 미국의 철도 미래 발전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망치를 두드렸다네."하고 말했다.

그렇다. 앞날을 내다보고 현재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 꿈은 이루어진다. 시간에게 끌려가지 않고 앞에서 시간을 끌고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그날 생활에 만족하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사람이란 '한 해의 마지막에서 지난해의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용원 전 격동초등학교장 아동문학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