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수출부진에 따른 경기침체를 내수경기 활성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면서 시중에는 부동자금이 몰린데다 여러 요인이 더해져 부동산 투기열풍이 일자 언제나 그랬듯이 뒤늦게 제동을 거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투기지역 지정이라든가 재건축 안전진단 심의강화, 재건축허용기준 연장 등의 정책이 발표되면서 그동안 이런 호기를 놓칠세라 한몫 챙기려했던 일부건설업자, 부동산브로커, 그리고 해당주민들의 심한 반발이 여기저기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한국에서의 건축은 부동산이란 이름의 자본주의에 꼼짝없이 포위되어 버렸다. 건축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신성한 가치와 미덕이 경제논리라는 지상과제 앞에 너무도 무력해졌다. 건축가의 한사람으로서 이 땅에서의 건축가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인지가 의심스럽다. 건축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거창한 목표 대신 오히려 환경파괴, 경관훼손, 교통유발의 주범으로 자주 지목되는 불상사로 겪고 있다.

 요즘 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각종 부동산 관련 분양광고는 건축이라는 이름을 빌어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허위정보로 채워져 있음을 쉽사리 알게 된다. 또한 고층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의 위용은 우리 도시풍경으로는 가히 폭력적이라 할 수 있다. 그곳에 항상 건축가가 참여하지만 생성의 조역일 뿐 진정한 의미로 그들을 건축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재건축과 관련해 예상되는 부작용은 이미 많은 불씨를 키워가고 있다. 자원낭비는 물론이고 폐기물처리 역시 심각할 뿐 아니라 교통 방해, 공해 등을 유발할 뿐아니라 재건축 기간 중 주민들의 임시 주거 마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전월세 값을 오르게 하는 부작용까지도 초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건축에 따른 차익을 노린 투기가 성행하고 이것이 도미노 식으로 주변 집값까지 자극하여 나라전체 부동산값 상승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1900년대 초반에 지은 아파트들이 몇 세대를 이어가며 별 탈 없이 쓰고 있는데 이 땅에서는 20년이 될까 말까한 멀쩡한 아파트를 허물고 있다.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서가 아닌 더 높고 더 좁은 집일지언정 집값만 오르면 된다는 식으로 재건축을 지상과제로 여기며 밀어붙이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을 유린하고 공간을 착취당하는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용적률을 강화하려는 당국은 여기저기 협박(?)의 대상이 된다.

 이젠 어느 누구도 시장경제가 가져다준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 하거나 거부한다는 것은 왕따가 되기 십상일 뿐이다.

 이런 도시구조는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구네가 아니라 00아파트 00동 00호라는 부호로 매겨지고 평수로 평가된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서로 "801호야" 혹은 "1024호 아줌마"라고 부른다. 개체성은 오간데 없다. 우리 집, 그 어디에도 나의 가족과 나를 찾을 수 있는 정체성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사람이 사람을 느끼는 것도 불가능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간이 자연과 주변의 사람으로부터 타자화 되면서 우리의 도시는 모두의 것인 소중한 공공영역이 아무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구 침해되고 유린되어지는 것이다. 호화로워져 가는 내부공간에 비해 빈곤해져가는 외부공간 사이의 불균형은 바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공적영역이 그 기능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사적영역 또한 그 존재가치를 상실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단할 수 있다. 공과 사가 이성적으로 역할분담이 이루어 질 때 우리의 도시는 혼돈과 억압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시민사회운동이 도시와 환경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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