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다시 이천에서의 큰 재난을 맞았다. 인터넷 사이트를 포함하여 이를 다루고 있는 방송과 신문에서는 사고발생의 근원적 원인과 재발방지대책 보다는 사고 발생 이후의 가족들 슬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화재예방과 함께 화재진압 책임을 지닌 소방서는 건축허가 당시부터 건물배치와 용도, 사용 재료의 안전성을 함께 검토한 후 허가하고 검사했을 것임에도 그 책임자라는 이천 소방서장은 TV브리핑을 통해 '냉매가스 암모니아' 운운하는 무지를 노출했으니 우리가 이들을 믿고 세금을 내고 또 그들에게 국록을 지불한다는 자체가 한심한 일이다.

사고현장을 보지도 못한 채 뉴스 보도만을 바탕으로 추측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으나 암모니아 냉매가 사고를 유발하였을 리는 전무하다. 소방서장은 아마도 그가 건축허가 당시 건물과 관련된 온갖 자료들을 다 받아보았을 것인데도 왜 이렇게도 무지한 브리핑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히 사고 현장에는 발생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일거에 내부를 연소시키고도 다시 연쇄적으로 폭발이 이어졌다면 냉동 창고 건축과 관련이 없는 건축과정상의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송유관 절도를 상습적으로 해오던 자가 사망자 가운데 포함되었다는 풍문도 있다. 말하자면 핫테핑 작업 중에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란 추측이 그 근거이다. 핫테핑(hot tapping)이란 송유관이나 화학공장 배관 등 설비 내부에 위험물이 차있는 상태에서 용접기로 천공 작업을 하는 작업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건축 과정상에 일어난 의외의 원인일 것이라 추측하는 근거가 바로 이점이다.

최근 울산에서도 송유관 위를 비닐하우스로 덮어씌우고 기름 도둑질을 하다가 화상을 입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것이 비닐하우스가 아닌 건축 구조물이었다면 그도 마땅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핫테핑 작업이란 우리와 같은 전문가들도 면밀한 준비와 안전조치를 끝낸 다음 실행해야 하는 위험한 작업이다. 당해 내용물질의 인화점과 발화점을 확인하고 폭발한계에 이르지 못하도록 불활성 가스를 주입하고 그리고 배관 노출 시의 내용물 누출확산 방지를 위한 벤딩과 클램핑을 준비하는 외에도 화재진압을 위한 소화설비 등의 준비를 거친 이후에도 연속적으로 온도 변화와 증기 농도를 측정해야한다. 그러나 '한탕'을 준비하는 절도에 있어서는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것은 이 사고 이전에 이미 송유관 절도혐의가 있는 용접사가 최근 송유관 관통지점에 가건물을 세우고 의문의 작업을 하던 용의자였다는 설이다. 이에 의문을 가진 어떤 사람이 건물을 기웃거리다 법원에 피소되었고 약식 재판에서 30만원의 벌금까지 부과 받았다는 사람의 진술이 그것이며 그때 이 피의자는 재판부에다 현장 확인을 요청했으나 그 요청이 묵살되었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가 지닌 안전 문화이고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화재가 일어나고 사람이 죽고 그런 의문을 주장하는 사람의 의견이 무시되는 이런 일련의 일들은 바로 우리의 관행이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우리의 수준이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가 위험을 하찮게 경시하는 경향 (Risk-taking) 때문이며 이것은 '코리아 2000' 경영진만의 실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 국민의 경향이고 정서라고 보아야 한다.

안전보다 성과를 중시하고 내실보다 외형을 지향하는 과정 생략의 결과주의가 빚어낸 우리들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사고가 일어날 때 입을 수도 있는 엄청난 부과 비용보다는 현재의 비용절약만 우선시하는 한탕주의와 하도급 관리 시스템의 허실과 함께 안전에 대한 지식체계를 갖추고서도 그런 전문성이 사회와 접속할 수 없는 안전의 황무지, 그런 사회가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드웨어와 노하우의 조율이 실패하고 규정과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일관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인적구성의 구조적 문제 등이 빚어낸 필연적 사고라 보아야 한다.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불행하게도 이런 사고들이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신승부 울산대학교 생명화학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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