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소방방재청이 신설되면서 안전한국 실현을 위한 새로운 비전으로 'Safe Korea'를 제시하였다. 이제 'Safe Korea'는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도 그 이름 앞에 붙여 쓸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Safe Korea'에 살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순간의 방심과 부주의가 낳은 태안군 기름유출사고로 지역주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서해안 생태계가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이러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도 이천에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고는 안전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전형적인 인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더욱 반성해야만 한다.

과거 우리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붕괴 등 여러 형태의 인재성 사고를 겪으면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안전을 최우선시하여 다시는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잊혀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아픈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우리는 비슷한 사고를 또 당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근본 원인을 파악하여 치유하려 하기 보다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단편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데에만 급급했지 않나 생각 된다.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안전불감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다른 무언가의 탓으로 돌리고 마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교훈을 우리 스스로 외면하는 것이다.

이번 태안군 기름유출사고와 이천 냉동창고 화재의 주된 원인도 역시 '안전불감증'이다. 우리의 일상화된 '빨리빨리'문화와 지나친 편의주의로부터 비롯된 '안전불감증'은 안전을 차선으로 미뤄 버리는 중증의 질환이다.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에서는 끊임없이 '안전불감증'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것을 치료해야 만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대형사고가 터져도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안전불감증이 쉽게 치유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자신 또는 우리 가족에겐 그러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과거의 습관을 그대로 답습한다.

따라서 '안전불감증'의 치료는 사고의 피해자를 '우리'라는 공동체의 틀로서 바라보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안전에 주의하지 않으면 나에게도 언제든지 대형사고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피해자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안전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당국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책임자를 처벌하고 제도상의 허점과 인허가상의 불법까지 파헤치겠다고 한다. 물론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가져온 사고인 만큼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미비한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귀 기울이고 눈여겨 봐야할 문제의 본질은 작업장에서의 안전수칙을 소홀히 여기는 현상, 즉 '안전불감증'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며 나아가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를 단순히 아픈 기억으로 남기지 말고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반성해 보는 계기로 삼을 때, 안전사회(Safe Korea)가 실현되며 그 결과는 안전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김용근 온산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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